CF/신문잡지2015. 12. 31. 20:19

1998년 1월 1일 현대그룹 지면광고


4천 5백만이 하나된 새아침!

더 큰 도약의 새해를 현대가 열겠습니다.


명실상부 자산기준 재계순위 1위를 차지했던 현대그룹

매년 신문사 첫지면이나 마지막면을 그룹사 광고로 채우던때

현대그룹이 그 지면을 채우곤 했다.


매해 이번엔 어떤 새로운 광고들이 실려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신문가판대로 달려가곤 했었다.


각종 신문사 창간기념일은 각종 기업들 광고가 넘쳐나는 날이었다.

한때 신문사들의 창간기념일을 머리속에 입력해두고

그날이 되면 어김없이 신문을 사러갔다.

남들은 광고가 많아서 지겹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광고에 관심이 많이 있었기에

이런날이 오히려 반가운 날이었다.


볼때마다 실려있던건 국내 5대 재벌답게

현대그룹 삼성그룹 럭키금성그룹(LG그룹)

대우그룹 선경그룹(SK그룹)과 그 계열사들의 광고들이었다.


1980년대엔 한자가 병기된 광고가 많았던 반면

1990년대 들어선 한글로만 표시된 광고가 주류를 이루었다.


1960년대 박정희시절 이미 정책적으로

한글표기 광고를 하기로 추진이 되어

여러 기업들도 이에 따르긴 했으나

70년대와 80년대에도 여전히

한자로 표기된 광고가

많이 보였었다.


요새는 한자 표기광고는 볼수 없을정도다.


어느새 2015년도 마지막 날이다.

2000년대 들어선 시간이 참 빨리빨리 지나가는것 같다.


이 현대그룹 지면광고글이 올해의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될지

아니면 또다시 다른글을 올릴지 나도 알수 없지만

혹시나 이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말


201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10. 14. 21:55

1999년 삼성상용차 1톤 트럭 SV110 지면광고


삼성그룹의 이건희는 자동차 사업진출을 위해서 김영삼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 쪽에

부지를 매입해 삼성자동차 공장을 짓는등 김영삼으로부터 사업승인을 받기위해 꽤나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당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우 쌍용 기아차 등 자동차 관계사 7개사는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에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광고를 내놓았지만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을 막을순 없었다.



1994년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을 반대하는 자동차 7개사의 반대성명광고


삼성은 승용차를 내놓기 전에 먼저 삼성중공업에서 1994년쯤 대형트럭 판매를 시작했다.
는 삼성자동차를 설립하기전인 1990년부터 지속적으로 상용차사업에 진출의지를 보였다.

1992년 상용차사업승인을 정부로부터 받았고 1994년 상용차사업에 먼저 뛰어들었다.

 


1995년 설립된 삼성자동차는 2년뒤인 1997년 첫 승용차인 SM5를 시판하기에 이른다.

허나 3.5.7시리즈를 BMW의 이의제기로 외국에서 사용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SM5 광고역시 벤츠의 광고 표절의혹이 일었다.

 

1995년 삼성그룹의 자동차사업자 모집 지면광고

1997년 삼성자동차 브랜드 네임공모 지면광고

 

삼성자동차와 상용차는 IMF 부채문제 기아차 인수실패등 여러가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삼성자동차는 르노에 인수되었고
삼성상용차 역시 야무진 이란 브랜드로 소형트럭을 내놓았지만 뒤처리가 깔끔하진 못했다.

다.

 

르노삼성자동차 로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7. 21:30

1994년 대우전자 디지털 피아노 벨로체 지면광고


1994년 3월 30일

대우전자에서 디지털 피아노 벨로체를 생산 판매에 들어갔다.

기존 피아노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무거웠던 반면

전기로 연주하는 디지털 피아노 벨로체는

가볍고 비교적 싼 가격에 구매할수 있는 제품이었다.



기존의 피아노 판매업체였던 삼익악기와 영창악기는

95년 삼익 아르떼 피아노와 영창 그린피아노등 신제품을 내놨고

이에 대우전자는 가야금 대금 굿거리 장단을 추가한 벨로체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시판 1개월만에 1천대가 판매되는등 판매폭증을 기록했다.


하지만 불어닥친 IMF의 바람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1998년 9월 전자업계 인력감축에

대우전자에서 벨로체 사업부만 따로 분사되었다.

지금도 업체가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4. 19:14

1991년 백양 BYC 지면광고


80 - 90년대 속옷시장은

쌍방울의 트라이(TRY)

태창의 빅맨(VICMAN)

백양 BYC가 점령했다.


트라이는 이덕화를 빅맨은 노주현을

BYC는 유인촌을 모델로 기용했다.


KBS2 TV 주말드라마 사랑의 굴레 주인공 김미숙과 고두심

고두심의 언니역인 순천댁과 남편역인 노주현


이덕화와 노주현은 MBC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고 후에 노주현은 고두심과 함께

KBS2 주말드라마 사랑의 굴레에 주연으로 열연했다.

잘났어 정말 ~고두심이 유행어가 된 드라마다


1991년 방송된 KBS2 TV 주말드라마 야망의 세월 유인촌과 전인화


전원일기 둘째 아들로 서글서글한 이미지의

유인촌이 바로 백양 BYC의 모델이었는데

KBS2TV 주말드라마 야망의 세월의 인연으로

이명박 정권들어 문화체육부 장관에 취임하게 되였다.


성질뻗쳐서 XX란 대사

아이패드를 한국에서 인증받기전에 브리핑에 사용해서

과일촌 유익점이라고 불린 유인촌이다.


유인촌은 1990년대 KBS2 TV에서 방송되었던

현대건설 이명박을 모델로 만든 드라마

야망의 세월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


현대건설 주식회사 로고

1990년 5월 소련을 방문한뒤 찍은 사진 이명박 정주영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현대건설 이명박과 정주영의 이야기가

대한건설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졌고

당시 마누라로 전인화가출연

이휘향과 꾸숑으로 최민식이 출연하였다.


이 드라마의 인기로 유인촌은 대우전자 모델을

최민식은 광동제약 운지천 광고를 찍게되었다.


유인촌의 모델인 이명박은 드라마의 인기로

1995년 김영사에서 신화는 없다라는 책을 출판했고

이후 2000년 들어 서울시장까지 재직하였다.


1995년 김영사에서 출간된 이명박 저서 신화는 없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8. 21. 18:44

1995년 케이블 TV 유료영화채널 캐치원

1996년 케이블 TV 영화전문채널 DCN


1995년 3월 케이블TV 시대가 한국에서도 열림에 따라

지상파 4사 (KBS MBC SBS EBS)만이 아닌 전문다채널 시대가 열렸다.


오늘 소개할것은 삼성영상사업단의 유료영화채널 캐치원

그리고 대우시네마 네트워크의 영화전문채널 DCN이다.



비디오영화가 흥하던 시대에 맞수였던

삼성전자 자회사 스타맥스 삼성물산 드림박스와

대우계열의 우일영상 시네마트와 경쟁을 벌였다.

1995년 비디오시장에서 대우계열영화사가 34%

삼섬전자 자회사인 스타맥스가 28%를 기록했고,

선경그룹의 SKC가 18%를 차지하였다.



비디오영화 시장에서의 경쟁은

케이블TV 영화채널에서도 그대로 벌어져

(삼성전자 스타맥스 삼성물산 캐치원 제일기획 Q채널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신설법인)

삼성영상사업단(1999년 해체)의 캐치원

대우시네마 네트워크 DCN의 영화전쟁이 벌어졌다.


유료영화채널이었던 캐치원은

개봉한지 얼마안된 최신영화를 가장 빠른 시간에

TV로 만나볼수 있다는게 장점

DCN은 유료가 아니라서 부담없이 볼수 있다는점이 장점이었다.




공교롭게도 캐치원과 DCN은

나중에 동양그룹에서 분리된

동양제과 오리온의 계열사

온미디어에 인수되어.

DCN은 OCN으로 변경된다.






하지만 온미디어를 삼성에서 분가한

CJ그룹이 다시 인수하게된다.

삼성→동양오리온→삼성분가기업 CJ가 최종인수

온미디어는 CJ E&M에 통합되었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자동차/잡담방2015. 8. 17. 20:40

1994년 현대자동차 엑센트 지면광고


1994년 4월 1일부터 시판에 들어간

현대자동차 엑센트는

1989년부터 X-3프로젝트로 개발에 착수

개발비로 3500억원이 들어가

4년4개월만에 상품화시킨

100% 국산기술 차량이라는걸 현대자동차측은 강조하였다.


당시 모델로는 마삼트리오라고 불렸던

이수만 / 이문세 / 유열이 광고모델로 나왔다.

나중에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전혜진이 모델로 나왔던걸로 기억한다.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겸 MC 전혜진

현대자동차 엑센트의 가격은

1.3 ES 520만원 / 1.5CS 608만원

에어백 60만원 / ABS브레이크 75만원이다.


에어백과 ABS브레이크등 옵션을 둘다 달았을때

기아 아벨라보단 148만원 비싸고 대우 씨에로보다는 27만원가량 싼 수준

둘다 빼면 아벨라와 13만원차이 / 씨에로와는 97만원차이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자동차/잡담방2015. 8. 17. 20:16

1994년 기아자동차 아벨라 지면광고


1994년 3월 국내 출시된 기아자동차 아벨라 가격은

3도어 GI  505만원 / GXi 555만원

5도어 GXi 575만원 / GLXi 595만원 이다.


가장 비싼 차량도 대우자동차 씨에로보다 50만원가량 싸다.


포드의 디자인, 마쓰다의 엔지니어링 , 기아의 생산이라는 역할분담으로 이루어진 차다

1988년 7월부터 1991년 5월까지 개발사전단계를 마무리짓고고

4년 7개월만에 총 개발비로 4천 7백억원이 들었다.


개발비는 대우자동차 씨에로의 10배가 들어갔으나 가격은 더 싸다.

뭐 개발비만 반영되는건 아니니까....ㅎㅎ

게다가 한국 미국 일본 3사 공동참여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자동차/잡담방2015. 8. 17. 20:04

1994년 5월 대우자동차 씨에로 지면광고

강하고 안전한 차라는 문구가 강조되어 있다.

시에로 가격과 연비는

GX - 645만원 1498cc 15.5km/

RX - 705만원 1498cc 15.1km/

DOHC PACK : 70만원


르망과 에스페로의 중간급 엔진을 쓴 씨에로는

독일 포르쉐 사의 기술을 도입해

1991년부터 2년 6개월간 450억원의 개발비를 투입해

생산한 자동차다.

DOHC 엔진의 경우 최고출력 100마력

최고속도 175km를 낼수 있다

1994년 8월 대우자동차 씨에로 흑백지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잡담방2015. 7. 25. 23:30

CJ그룹 로고

CJ그룹 CI 색상규정

프랑스 루미낙 (Luminarc) 세로 로고


프랑스 회사 루미낙 가로 로고


2003년 제일제당 그룹이

CJ그룹으로 변경되면서 새 CI도 제작하였다.


당시엔 몰랐지만 10년쯤 뒤에

프랑스 회사 루미낙의 로고를 본뒤

CJ그룹 로고가 프랑스 루미낙의 로고를 표절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로고가 매우 비슷했다.


과거 GS그룹 로고사건이 생각나기도 했으니...


프랑스 루미낙 주방식기 회사인데

얼핏 100년이 넘었다는 설명글을

제품상자 겉부분에서 봤다.


과거 대우의 로고가 외국항공사의 로고와 비슷하여

대우의 로고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은적이 있다.

CJ그룹은 GS그룹처럼 완전똑같은 편은 아니지만

내가 볼때도 유사점이 보이는데

외국사람이 볼때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CJ그룹 상표를 보면서 루미낙을 떠올릴것 같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재벌 대기업/잡담방2015. 7. 25. 09:01

1990년 10월 한라그룹 신입사원 모집 지면광고


한라그룹

창업주는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동생이자 둘째인 정인영이다.

정주영과 정인영


정인영은 일본 유학후 귀국 동아일보 기자로 지내다가

1953년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재직하였다

이후1962년 만도기계와 현대양행(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설립

1978년 한라시멘트 1981 한라건설을 세운뒤

1984년부터 한라그룹 회장에 취임하였다.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신군부의 산업합리화 조치에 의해

중공업과 자동차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정주영과 김우중에게 강요했던 모양이다.

정주영은 자동차를 택했고 김우중은 중공업을 택했으나

금융권에서 2천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신군부에 요청했다.

신군부는 2천억원을 지원해 주느니 차라리 공기업화 시킨다며

한국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시켰다.

이 내용은  정주영의 자서전 이땅에 태어나서에 묘사되어 있다.


정주영 입장에선 현대양행을 정부에 빼았기고 나서

그 동생 정인영이 중공업에 대한 미련을 못버렸는지 한라중공업을 다시 설립했다.

이때 스트레스와 충격을 받아선지 정인영은 휠체어 신세를 지게되었다.


정주영과 김우중의 관계는 이때 이후 악화되었다. 김우중의 나이는 정몽구와 2-3년 차이나는터라

정주영입장에선 김우중이 상당히 건방지게 느껴졌을수도 있다.

정주영이 보기에 김우중은 부실기업 인수로 커온 기업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대우그룹자체가 정부로부터 금융권지원을 받고 부실기업인수로 그룹의 덩치를 키웠다.

그래서 전두환의 신군부에도 그 같은 요구를 했던것이다. 물론 현대양행의 부채문제도 있었다.)


1992년 정주영이 대선에 출마선언하자

김우중은 자기도 출마하려다가 박태준에게 신당창당을 제의하면서 1천억원을 동원하기로 하는데

포항제철을 하면서 대우의 회계와 부채문제를 알고 있던 박태준은 대우자동차를 팔아

그 돈을 마련할 생각이면 회사재무구조부터 고쳐라며 핀잔을 주었다


아무튼 정인영의

한라그룹은 이후 재계순위 12위까지 오르는등 승승장구했으나

1997년 12월4일 5천억원의 어음가운데 1700억원을 막지 못하고 최종 부도처리됐다.

공교롭게도 한라중공업에 1조원을 투자했고 가격덤핑으로 인해 적자를 내다가

이렇게 한라그룹 해체라는 위기를 겪게 되었다.


한라중공업은 현대중공업에 위탁경영되다가

현대삼호중공업이라는 현대중공업 계열사로 편입됐다.


정인영의 둘째 아들인 정몽원이 회장이 되어

제 2의 한라그룹을 재건하고 있는데 2000년대 들어선

정확히 어떤 계열사들이 소속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현대양행에 관해선 나중에 다시 관련지면광고를 올리도록 하겠다.


1992년 2월 한라그룹 계열사


한라중공업 / 만도기계 / 한라건설 / 한라시멘트 / 한라공조

한라자원 / 한라해운 / 한라레미콘 / 한라창업투자 / 학교법인 배달학원

1990년에 비하면 계열사가 2개 늘어났다

1992년 10월 한라그룹 계열사 마이스터라는 계열사가 하나 더 늘었다. 총 11개

이때 한라그룹 계열사는 총 14개

캄코 한라마이티정보통신 한라제지 이렇게 3개 계열사가 늘었다

1992년 10월 1일 한라그룹 흑백지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