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Blog Skin방2015. 9. 1. 17:49

Fate Stay Night UBW Tohsaka Rin Tistory Blog Skin 최종판


9월의 첫날 분위기도 바꿀꼄

블로그 스킨과 배경화면을 바꿔봤다.

기존의 아오자키 아오코와 세이버 스킨도 좋았지만

약간 더운 느낌이 들어서 새달도 맞이한겸 변화도 줄겸 겸사겸사 바꿔봤다.


주요 인물은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UBW (리메이크판)의 토오사카 린이고

그외에 블로그 이름과 주소 페스나 로고 배치이동 컬러변경 정도다.

평소에 밝은 색 사진이 좋기에 블로그 스킨도 원본에서 조금 밝은 걸로 변화를 줘봤다.


페스타 UBW 블로그 스킨 최종판은 원래 토오사키 린만 확대된채로 활용할 생각이었으나

오른편에 보이는 페스나 UBW 로고까지 사용하려다보니 아쳐와 세이버 시로도 같이 보이도록 만들게 되었다.


카시와자키 세나 티스토리 블로그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UBW (리메이크판) 토오사카 린 스킨

페이트 로고를 흑색으로 변경한 경우

이건 어두운 버전의 스킨

얼핏 보면 다 똑같아 보이겠지만 자세히 보면 밝기가 틀리다. 이건 밝은 버전의 스킨들

페이트 로고 블로그 이름 주소를 전부 왼쪽에 배치

페이트 로고만 그림 왼편에 배치

페이트 로고를 오른편에 배치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8. 23. 09:20

1988년 농심 컬러 지면광고 - 신라면  안성탕면  짜파게티 육개장 사발면 너구리 얼큰한맛 우동


1980년대 농심의 제품은 스낵과 라면에 집중되어 있었다.

신격호의 동생인 신춘호가 형과 싸우면서 독립한 롯데공업주식회사가

후에 사명을 변경하면서 농심이 되었다.



당시 라면 강자였던 삼양라면과 경쟁하면서

한창 도약을 하게 되는데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등 신제품 출시와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공식 지정라면이 되면서

80년대 중반 근소한 우위를 차지하게 되고

1989년 삼양라면 공업용 우지파동이 일어나고

이후 농심은 식물성 기름 팜유를 쓴다는걸 강조하면서

라면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라면 모델로는 코미디언 구봉서와 탤런트 강부자를 콤비로 썼다.

안성탕면은 삼양라면과 비슷한 수준의 면발이라 그다지 맛이 안났다.

신라면은 그보다 조금 굵었는데 농심의 3개 신제품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가

80년대 중반이후 주로 먹던 라면들이었다.

가격대는 조금 비싼 200원이었다.

그때 일반적인 라면가격이 120원 -150원 사이였다.


특히 너구리의 굵은 면발은 기존 라면들의 가는면발보다 훨씬 씹는맛이 있었다.

육개장 사발면은 팔도에서 먼저 나온 용기라면 도시락보다

더 자주 접할수 있었다.


당시 한국야쿠르트 도시락은 태현실이 모델로 나오고 있었다.

직사각형의 용기에 그시절 흔한 가늘은 면발이라 내 입맛엔 별로 맛지 않았다.

팔도하면 야쿠르트로 유명해서 요구르트 회사 이미지가 강하게 베어있었고...



 

 


 



농심은 스낵에서도 강세를 이어갔는데

새우깡, 꿀꽈배기, 감자깡, 양파링, 스위티 등등

여러가지 스낵을 내놓으면서 경쟁업체들을 저 멀리 따돌렸다

1990년 스낵시장에서 농심은 47%라는 점유율을 기록했다.

삼양식품은 스낵시장에서도 농심과 격돌했으나

2위 자리를 차지한건 오리온 프리토레이였다.




농심은 2008년 노래방 새우깡에서 발견된 쥐머리를

식약청이 조사나오기전에 증거인멸시켜

소비자들의 비난을 받으며 위기가 찿아오는데

당시 농심은 하지않던 이미지 광고로

개선을 꾀했다.



쥐머리 새우깡, 나방 짜파게티

둥지냉면에서 애벌레가 발견되는등

연속적으로 불미스런 일들이 벌어져

농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등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으나

최근의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농심의 우위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스포츠2015. 7. 19. 18:30



한국일보사 계열의 일간스포츠가 1969년 9월 창간되었고 쭉 스포츠신문 시장을 독점해오다가

서울신문사 계열의 스포츠 서울이 1985년 6월쯤에 창간되면서 스포츠신문 경쟁시대가 열렸다.



보안사령관 시절의 전두환


서울신문은 YTN 연합뉴스와 같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관영언론의 입장이 강했기 때문에

전두환 신군부 집권기에 실세중에 실세였던 3허(허삼수 허화평 허문도)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었던 허문도가 3S정책(SEX SPORTS SCREEN)을 펼치는걸

전두환에게 건의 대중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는 우민화 정책을 펼침에 따라

프로야구의 개막과 활성화가 되었고 거기에 맞물려 스포츠서울도 창간되었다.

(허화평과 허삼수는 군인출신도 아니고 쿠데타에 참여하지도 않던 조선일보 출신의 허문도가

전두환에게 발탁되어 자신들과 함께 3H라고 묶여서 불리는것을 상당히 싫어했다.)



 

 


 


허화평

허삼수

허문도

5공 정권의 실세였던 세사람



게다가 조선일보사에서 1990년 3월에 스포츠조선까지 창간하면서

오랫동안 3사 경쟁체제가 되었다.


1980년대까지만해도 신문면이 아무리 많아봐야 16면에서 24면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32면을 넘어서고 컬러TV방송시작과 컬러면이 많은 스포츠 신문이 창간되더니

통제와 검열이 강했던 성에 대해서 1990년대 들어서 빗장이 풀어졌다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소설 연예인 복장 심지어 광고(700 전화광고)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꽤 많이 풀어졌다.

스포츠 신문 3사의 선정적 컨텐츠 경쟁이 심해져서 오죽하면 공중파TV에서

황색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책을 세우자는 토론까지 벌어졌을 정도였다.



1992년쯤 샤론스톤이 주연한 원초적 본능이 개봉되면서

적어도 외부적으론 성에 대해 보수적입장이 상당히 많이 걷혀버렸다는걸 알수 있다.

예전같으면 검열에서 다 삭제되어 알맹이 없는 영화가 되어버릴 이 영화

아니면 수입단계에서 이미 저지당했을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까지 한걸보면..


원초적 본능은 일주일만에 관객 10만명이 돌파하는등 당시로썬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때는 100만명만 돌파해도 대기록에 올라갈 때였으니 더이상 말이 필요하겠는가?


1993년들어서 태평양 아모레 화장품에서 이병헌과 김원준 신은경을 내세워

아모레 트윈엑스라는 화장품을 출시하고

이전 세대와는 다른 나를 표현하면서 X세대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에 맞춰 언론에서도 신세대인 X세대를 다루었고

내일은 사랑 출연으로 인기를 얻은 이병헌

SBS 인기가요에 유독 출연이 많았던 김원준

시기는 늦지만 MBC 드라마 종합병원에 출연한 신은경

도 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






일간스포츠는 2000년대 중후반 한국일보사와 문제가 생겨

중앙일보사로 이적하는등 꽤 충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국민일보 계열의 스포츠 투데이(스투닷컴)가 창간하면서 스포츠신문은 또다시 격변에 휘말렸다.

동아일보의 스포츠동아 경향신문의 스포츠칸(후에 스포츠경향으로 바뀜)까지 가세하면서

쇠락해가는 스포츠 신문의 경쟁(인터넷과 PC방의 보급)은 더욱 가열되었지만

그 결과는 글쎄.. 모르겠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되는걸까 (던만추) 헤스티아 피규어 뒷모습 컬러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되는걸까 (던만추) 헤스티아 피규어 앞모습


아래 올린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의 모습을 보면

헤스티아의 자세가 미묘하게 다른걸 볼수 있다


헤스티아의 골반을 튼 방향이나 각도차이가 너무 나 보여서

이게 같은 피규어의 앞뒤 모습이라기보단 서로 다른 제작사에서

또는 같은 헤스티아 피규어라고 해도 포즈가 약간 다른 별개의 피규어 사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피규어의 모습일 가능성도 배제할순 없겠다 싶다.


특히 뒷모습은 색표현만으로 실제로 비치는 옷을 입은 효과마져 내고 있는데

실제 노출은 아니지만 색표현으로 노출한 듯한 효과를 낸다는게 놀랍다.


원래는 먼저 올린 헤스티아 피규어 글에 컬러사진만 한장 추가하려고 했으나

이미 검색결과에서 저 뒤로 밀린 글에 사진을 추가해봤자 블로그 검색유입효과도 없을것 같아 새로 올려본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