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TV 동영상2016. 2. 5. 09:04

기아자동차 뉴 K3 CF


몇달전부터 이 광고를 블로그에 올려보고 싶었으나

CF도 못찾겠고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광고영상을 찾아서 링크해본다.


이 광고에서 주목할 만했던건

그냥 간단히 B C로 나오는 외국여자들이 예뻐서?


과거엔 CF에 외국사람들이 나오면

상당히 어색했었지만 요새는 하도 많이 나오다보니

그렇게 어색하지도 않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6. 1. 18. 00:18

1992년 12월 10 통일국민당 기호 3번 정주영 후보 지면광고

1992년 12월 17일 통일국민당 "정주영을 선택하는 날입니다" 지면광고

현대그룹 " 움직이기 불편하다고 권리까지 포기할 순 없죠" 지면광고

현대그룹의 전면광고로 투표 독려광고지만 정주영을 위해 한표를 행사해달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해야겠다.

14대 대통령 선거 시도별 개표현황. 서울에선 김대중이 8만표정도 앞섰고 경기쪽은 김영삼이 15만표 정도앞섰다.

정주영은 16.1%의 표를 얻었다. 박찬종은 6.3%


이례적으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쪽에서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하였는데

직접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속내용은

당시 집권정당이었던 민자당의 통치가 오래되었으니

이제 새로운 정당과 후보로 바꾸자는 내용이었다.


내가 찍는다면 정주영이나 박찬종에 투표를 했을테지만

아쉽게도 두 후보뿐만 아니라 양김씨 외에 모든 후보를 특표율을 다합쳐도

3위의 자리밖에 차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정주영과 현대의 특성상

울산이 포함되었던 경남권에서 높은 득표율을 얻을것으로 예상했었지만

23만 9천표대로 김대중보단 2% 높았지만 김영삼의 1/7정도 수준이었다.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으로

김대중은 정계은퇴를, 정주영과 현대그룹은 세무조사및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곤욕을 치뤘다.


김영삼은 칼국수를 통한 청렴이미지

전노 비자금조사, 금융실명제 실시등

집권 초중반까지 개혁과 청렴의 이미지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후반부 아들인 김현철 문제와 IMF가 터지면서

결정적으로 민심이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은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자민련 총재였던 김종필은 의원내각제를 통한 수상자리를 노렸으나

끝내 의원내각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대의 정주영은 금강산 관광 기아자동차 LG반도체 인수등

김대중 정권들어 특혜시비가 불거졌다.

거기에 아들인 정몽구와 정몽헌등이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서로 정회장의 후계자라고 싸우는등

왕자의 난이 불거져 말년엔 그리 편한 여생을 누리진 못했다.


1992년 12월 16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지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자동차/잡담방2015. 8. 17. 20:16

1994년 기아자동차 아벨라 지면광고


1994년 3월 국내 출시된 기아자동차 아벨라 가격은

3도어 GI  505만원 / GXi 555만원

5도어 GXi 575만원 / GLXi 595만원 이다.


가장 비싼 차량도 대우자동차 씨에로보다 50만원가량 싸다.


포드의 디자인, 마쓰다의 엔지니어링 , 기아의 생산이라는 역할분담으로 이루어진 차다

1988년 7월부터 1991년 5월까지 개발사전단계를 마무리짓고고

4년 7개월만에 총 개발비로 4천 7백억원이 들었다.


개발비는 대우자동차 씨에로의 10배가 들어갔으나 가격은 더 싸다.

뭐 개발비만 반영되는건 아니니까....ㅎㅎ

게다가 한국 미국 일본 3사 공동참여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8. 7. 22:52

1992년 아시아 자동차 타우너 코치 밴 트럭 최진실 지면광고

아시아 자동차 코치 밴 트럭 모습과 가격정보

1992년 아시아 자동차 로고


기아자동차의 계열사로 미니트럭 중형트럭 작은봉고 타우너 버스 지프차를 생산하던 기업이었다.

길이라도 좋다 아니라도 좋다 록스타 CF는 꽤 깊이 각인되어 있다.


대우상용차 티코 다마스 라보가 인기를 끌때

아시아 자동차에서 최진실을 모델로 내세운게 바로 타우너였다.


당시 판매되던 가격을 적어보자면

7인승 코치 SDX 4,995,000 / DLX 4,930,000 / STD 4,610,000

2인승 그라스밴 DLX 4,410,000 / 판널밴 DLX 4,320,000 원이었다.



아시아 자동차는 기아자동차와 함께 현대자동차에 인수된후 사라져버렸다.

기아그룹에도 1976년 인수되었는데 다시 인수된후 사라지다니...

이럴바엔 그냥 삼성자동차에서 인수하는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현대기아차 독점체제가 아니라 경쟁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1997년 CI 변경후 새한그룹 출범 지면광고

1997년 출범한 새한그룹의 로고와 계열회사들


삼성그룹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가 세운 새한미디어가 그룹의 모기업으로

1991년 이창희가 사망하자 그 아들인 이재관이 그룹을 물려받고 제일합섭 지분을 넘겨받은후

삼성그룹으로부터 완전 분리되었다.


이영자 회장

이재관 사장


이로써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불리된 그룹은

제일제당그룹 / 새한그룹 / 신세계그룹 / 한솔그룹 이렇게 총 4개다.


1996년엔  새한미디어 / 새한 콘크리트 / 새한이동통신 / 새한 종합개발 / 황성통운에 제일합섬까지 6개 계열사였으나

1997년 4월 그룹출범시엔 총 8개 계열사가 소속되어 있었다.


소속회사는

주식회사 새한 / 새한미디어 / 새한건설 / 새한마텍

새한텔레콤 / 디지탈미디어 / 새한로직스 / 새한정보시스템이다.


그룹출범당시 매출액 기준으로 재계순위 35위를 차지하였고

이영자회장과 그 아들 이재관 사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새한텔레콤은 삐삐로 잘 알려진 무선호출기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1997년 10월 새한그룹 지면광고

1997년 10월에도 새한그룹 계열사 숫자는 8개로 변화가 없다.

소속된 계열사들을 적어보자면


(주)새한 - 옛 제일합섬 / 새한미디어 / 새한건설 / 새한마텍

새한텔레콤 / 디지탈 미디어 / 새한로직스 / 새한정보시스템


이렇게 총 8개사다



새한미디어의 경우

IMF가 닥친 이후에도 구미필름공장에 1조가 넘는 무리한 시설투자를 했고

주식회사 새한의 대책없는 계열사 지급보증이 결국 새한그룹의 몰락을 이끌었다.



섬유사업의 부진과 철지난 비디오 필름사업에 과도한 투자

그리고 주식회사 새한의 1조 5천억 부채중에 계열사에

지급보증 대출해준 금액이 상당부분 차지하여

경영진의 무분별하고 잘못된 판단이

결국 새한그룹의 해체로 까지 이어졌다.






그 와중에 삼성의 금융계열사가

가장먼저 대출금 상환한 것을 보면

과거 기아자동차 사태를 보는것 같다.

설상가상이란 바로 이런경우에 적절한 말이다.

새한의 입장에서 본다면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 격이다.



이재찬의 경우 2008년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여

당시 대재벌총수임에도 불구하고 조카에게 신경쓰지 않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주식회사 새한은 웅진그룹에 인수되어 웅진케미칼로 사명을 변경하었으나

웅진그룹도 승자의 저주에 빠졌음인가

극동건설 인수등 윤석금 웅진회장의 무리한 인수확장이 그룹의 위기를 불러왔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재벌 대기업/잡담방2015. 7. 30. 20:53

1978년 1월 1일 한라의 현대양행 전체지면 광고

1978-9년 1월 1일 한라그룹의 현대양행 / 한라건설 / 한라엔지니어링 공동광고


이 광고의 문구를 보면 자신의 미래를 예견했음인가?


한국중공업을 선도하는 현대양행은 올해에도 열심히 일하겠읍니다.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정권의 산업일원화 조치에 따라

현대양행은 대우의 김우중에게 강제인수되려다가

김우중이 2천억을 융자해달라는 인수조건을 붙이자 신군부는 니들에게 2천억 지원해줄바엔

차라리 국가에서 경영하겠다하여 사명을 한국중공업으로 고치고

공기업화시켰다.


1977년 설립한 인천조선 주식회사가

1990년 상호를 한라중공업으로 변경하여

1998년 부도를 낸 이후 현대중공업에 인수되었다.


한국중공업은 1981년 대규모 적자를 보다가

1985년 이후부터 흑자전환하였다.

1989년 민영화 추진시 현대 한라 삼성 럭키금성등 재벌이 뛰어들었고

정부에서 중공업을 가진 재벌로 인수자격을 제한하자

특정재벌에 특혜를 준다는 이유로 한국중공업 노조가 반발하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현대그룹에 인수되는걸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결국에 2000년 두산그룹에 인수되는데

IMF이후 현대그룹이 김대중 정권의 비호아래 LG반도체인수 기아자동차 인수

금강산 사업 등 인수특혜를 받았다면

현대그룹의 분열이후 특혜로 커온 그룹이 두산과 한화 롯데정도다





식품과 출판을 주로 하던 두산이

고려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 등

과거 현대와 대우의 건설, 중공업 관련계열사를 대거 인수하여

특혜시비가 일었다.


한화는 과거 금융부분에서 손실을 봣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생명과 그 계열사들을 인수함으로써

나중에 대검에서 정관계 로비수사 회계비리 수사까지 들어갔다.



대한생명 51%의 지분을 판 예금 보험공사는 호주 맥쿼리와 이면계약과 헐값매각을 문제삼아

계약이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으나 소송에서 져 한화가 가져가게 되었다.



맥쿼리


민자사업에 항상 끼어들어 큰 이익보던 바로 그 맥쿼리

이명박과 그의 아들이 관련된 맥쿼리

흔히 먹튀자본이라고 하던가?

인천공항 민영화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항상 이름이 나오는 바로 그 맥쿼리다.

검은머리 외국인과도 관련이 있는 그 회사




롯데관련해서는 나중에 글올리때 적어봐야겠다.


1988년 인천조선 주식회사의 지게차 지면광고

한국중공업 지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7. 17. 20:00

1993년 대우자동차 에스페로 지면광고


1980년대 중반엔 르망을 내놓다가

1993년쯤 드디어 대우자동차에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에스페로를 내놓았다.

이전까진 직사각형의 각진 디자인의 차량(포니 스텔라 엑셀 프린스등등)들만 한국에 넘쳐났었던데 비해

이때부터였는지 현대자동차 소나타 기아자동차 세피아 등등

곡선형의 날렵한 디자인의 자동차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에스페로 1.5MPFi - 7,515,000 원 / 1.5 DOHC - 8,015,000 원 / 2.0 MPFI - 9,400,000 원


그 시절 물가나 월급을 통해 보면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지금 보면 괘 저렴한 가격의 차다.


CF도 기억나는데 주부로 보이는 여자가 에스페로의 모습을 보며 설명하는 CF로

올리비아 뉴튼존과 데이빗 포스터가 부른 노래가 BGM으로 쓰였었다.

나중에 관련 음악을 찾아서 올려보도록 하겠다.


아래 올린광고를 보면 미스코리아 에스페로모델 장미호가 같이 나왔는데

이 여자가 등장한 에스페로 CF도 있었다.

1993년 대우자동차 에스페로 지면전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