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2월 10 통일국민당 기호 3번 정주영 후보 지면광고
1992년 12월 17일 통일국민당 "정주영을 선택하는 날입니다" 지면광고
현대그룹 " 움직이기 불편하다고 권리까지 포기할 순 없죠" 지면광고
현대그룹의 전면광고로 투표 독려광고지만 정주영을 위해 한표를 행사해달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해야겠다.
14대 대통령 선거 시도별 개표현황. 서울에선 김대중이 8만표정도 앞섰고 경기쪽은 김영삼이 15만표 정도앞섰다.
정주영은 16.1%의 표를 얻었다. 박찬종은 6.3%
이례적으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쪽에서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하였는데
직접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속내용은
당시 집권정당이었던 민자당의 통치가 오래되었으니
이제 새로운 정당과 후보로 바꾸자는 내용이었다.
내가 찍는다면 정주영이나 박찬종에 투표를 했을테지만
아쉽게도 두 후보뿐만 아니라 양김씨 외에 모든 후보를 특표율을 다합쳐도
3위의 자리밖에 차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정주영과 현대의 특성상
울산이 포함되었던 경남권에서 높은 득표율을 얻을것으로 예상했었지만
23만 9천표대로 김대중보단 2% 높았지만 김영삼의 1/7정도 수준이었다.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으로
김대중은 정계은퇴를, 정주영과 현대그룹은 세무조사및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곤욕을 치뤘다.
김영삼은 칼국수를 통한 청렴이미지
전노 비자금조사, 금융실명제 실시등
집권 초중반까지 개혁과 청렴의 이미지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후반부 아들인 김현철 문제와 IMF가 터지면서
결정적으로 민심이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은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자민련 총재였던 김종필은 의원내각제를 통한 수상자리를 노렸으나
끝내 의원내각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대의 정주영은 금강산 관광 기아자동차 LG반도체 인수등
김대중 정권들어 특혜시비가 불거졌다.
거기에 아들인 정몽구와 정몽헌등이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서로 정회장의 후계자라고 싸우는등
왕자의 난이 불거져 말년엔 그리 편한 여생을 누리진 못했다.
1992년 12월 16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지면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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