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호 여성중앙 10 26 신재순 모델 이영애 베일속의 '그때 그 여인' 신재순 15년만의 현장증언 10.26 현장과 굴곡진 나의 삶을 말한다. 10.26 궁정동 만찬회장에 가수 심수봉씨와 함께 참석을 했던 여대생. 신재순씨. 이제는 한 가정의 평범한 주부가 된 신씨가 당시 두 눈으로 지켜본 사건의 현장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이학봉 당시 민정수석 등 고위층 인사들과 정부 기관의 도움으로 살았던 그 후의 삶. 팝공연 기획자인 지금의 남편과의 결혼생활 등 가슴독에 묻어둔 이야기 완전 공개 박정희 사망당시 현장에 심수봉과 함께 있었던 신재순이 기사에 실렸다. 전두환 이학봉 이 외에 간호장교 이복순의 기막힌 인생유전 김일성은 내 인생을 이렇게 유린했다한국제분 사장 장녀와 결혼하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
주식회사 화인 사명변경 지면광고 주식회사 화인 프로월드컵 뱅가드 전품목 세일 광고 부산에서 기차표 고무신을 생산하던 업체 동양고무가사명을 화인으로 바꾼뒤 본격적으로 그룹체제로써 확장을 시작했다.1978년 나이키와 제휴 판매를 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고 1986년 결별에 나서면서독자상표인 르까프를 내세웠고 신발기업이 아닌종합그룹체제로의 변화를 꾀했다. 그 유명한 리복 역시 화승을 통해 판매되기도 했다.화승그룹으로 전자 유화산업 무역부문으로 확장하다가1998년 IMF 직격탄에 부도를 맞았다.화승 관련광고는 몇장 더 있으니나중에 다시 올려보도록 하겟다. 프로월드컵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국제상사의 프로스펙스와 무슨 관계일까 궁금하던 시절도 있었다.W모양의 프로월드컵 로고는 1990년대 초반에 농구공이 튀기는 장면..
1978년 1월 1일 한라의 현대양행 전체지면 광고 1978-9년 1월 1일 한라그룹의 현대양행 / 한라건설 / 한라엔지니어링 공동광고 이 광고의 문구를 보면 자신의 미래를 예견했음인가? 한국중공업을 선도하는 현대양행은 올해에도 열심히 일하겠읍니다.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정권의 산업일원화 조치에 따라현대양행은 대우의 김우중에게 강제인수되려다가김우중이 2천억을 융자해달라는 인수조건을 붙이자 신군부는 니들에게 2천억 지원해줄바엔차라리 국가에서 경영하겠다하여 사명을 한국중공업으로 고치고공기업화시켰다. 1977년 설립한 인천조선 주식회사가1990년 상호를 한라중공업으로 변경하여1998년 부도를 낸 이후 현대중공업에 인수되었다. 한국중공업은 1981년 대규모 적자를 보다가1985년 이후부터 흑자전환하였다.19..
1990년 10월 한라그룹 신입사원 모집 지면광고 한라그룹창업주는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동생이자 둘째인 정인영이다.정주영과 정인영 정인영은 일본 유학후 귀국 동아일보 기자로 지내다가1953년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재직하였다이후1962년 만도기계와 현대양행(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설립1978년 한라시멘트 1981 한라건설을 세운뒤1984년부터 한라그룹 회장에 취임하였다.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신군부의 산업합리화 조치에 의해중공업과 자동차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정주영과 김우중에게 강요했던 모양이다.정주영은 자동차를 택했고 김우중은 중공업을 택했으나금융권에서 2천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신군부에 요청했다.신군부는 2천억원을 지원해 주느니 차라리 공기업화 시킨다며한국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시켰다. 이 내용은 ..
1990년 가정조선 12월호 박근혜 근영자매 육영재단 최태민은 어떤 사람인가 과거 오마이뉴스로부터 제기된 박근혜와 박근령육영재단 갈등. 그리고 사건의 불씨 최태민왜 박지만과 박근영은 노태우에게 편지를 보냈는가에 대한 기사가 2007년에 작성되었다. 가정조선 12월호에 실렸다길래 어떤 내용이 실렸는지 찾아보았다. 제목만 적어보자면 박근혜 근영자매 육영재단 이사장직 교체진상은 이렇다. 1 자매의 갈등인가 재산 싸움인가 2. 당사자들은 말한다 물러나는 박근혜씨 - 건강나빠 쉬고싶었다신임이사장 박근영씨 - 언니가 도와달라고 했다어린이회관 관장 송재관씨 - 나는 어느 편도 아니다사건의 불씨 최태민은 어떤 사람인가 3. 본지 단독입수 박근영씨가 저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이게 기사 제목들이다.당시..
한국일보사 계열의 일간스포츠가 1969년 9월 창간되었고 쭉 스포츠신문 시장을 독점해오다가 서울신문사 계열의 스포츠 서울이 1985년 6월쯤에 창간되면서 스포츠신문 경쟁시대가 열렸다. 보안사령관 시절의 전두환 서울신문은 YTN 연합뉴스와 같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관영언론의 입장이 강했기 때문에전두환 신군부 집권기에 실세중에 실세였던 3허(허삼수 허화평 허문도)그 중에서도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었던 허문도가 3S정책(SEX SPORTS SCREEN)을 펼치는걸전두환에게 건의 대중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는 우민화 정책을 펼침에 따라 프로야구의 개막과 활성화가 되었고 거기에 맞물려 스포츠서울도 창간되었다. (허화평과 허삼수는 군인출신도 아니고 쿠데타에 참여하지도 않던 조선일보 출신의 허문도가 전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