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신문잡지2016. 7. 16. 15:51

1987년 해태음료 보리텐 지면광고


1984년 농어촌 개발공사의 제조기술을을 받아 만든 일화의 맥콜

태평양화학의 맥향과 같이 보리 음료시장을 형성하다가

채산성악화르 태평양이 철수하고

1987년롯데칠성음료 비비콜

해태음료 보리텐

코카콜라 보리보리를 출시하면서

보리음료시장이 300% 성장세를 이끌며

기존 절대강자였던 사이다시장을 뛰어넘었다.


1987년 출시된 보리텐은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차지하여 인기를 끈

이상은을 모델로 내세워 광고전을 펼쳤다.


1988년 MBC 강변가요제 대상 담다디 가수 이상은(18)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6. 1. 28. 19:20

1989년 죠다쉬 JORDACHE 지면광고


보통시대-보통가격

"세계가 함께 신는 캐쥬얼구두-

고급의 품질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어냅니다."


미국의 유명 청바지 상표였고 고급 캐쥬얼 브랜드로

1982년 반도상사가 수입판매하던 브랜드 죠다쉬

(반도상사는 몇년후 럭키금성상사로 사명을 변경하게 된다.)

달리는 말의 머리와 갈기가 기억에 남는다.


말과 관련된 상표를 도입했던 그룹으로 한국엔 현대그룹이 있다.

현대자동차의 모델 포니가 조랑말이라는 뜻이 있고

갤로퍼 역시 역동적인 말을 모델로 광고를 진행한바 있다.


죠다쉬

1980년대 대중들에게 친숙했던 브랜드다.

1979년 이후 국내업체들의 외국 상표도입이 허용됨에따라

그 시절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브랜드들이 많이 들어왔다.

아래 도표를 보면 친숙한 브랜드들이 많이 보인다.


주로 미국과 일본 프랑스 잉글랜드 이탈리아 등지 상표가 도입되었다.


1983년 한국업체의 외국상표 도입현황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6. 1. 23. 23:45

1999년 다음(daum) 컬러 지면광고


1999년 한국에서는 다양한 인터넷 포털들이 경쟁하던 시기였다.

신문 광고전도 치열했고 한국포털 야후코리아 타도를 외치면서

승승장구했던 다음은 12월초 530만 회원을 모집하면서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 업체중 최다회원을 가진 포털의 위치를 차지했다.


프리첼의 커뮤니티 유료화로 그쪽에서 이동한 회원들이

다음 카페를 북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메일 온라인 우표제시행, 개선되지 않는 카페서비스등으로

2003년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가 생기면서 대거 이용자들이

네이버쪽으로 이동하였다.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창업주 이재웅 사장은

KBS 아나운서 출신 황현정과 결혼해서 화제가 되었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6. 1. 20. 22:24

1995년 신원에벤에셀 여름정기세일 이영애 심은하 임성민 김지수 지면광고


1995년은 신원에벤에셀 여성의류 브랜드 모델교체 바람이 일었다.

베스띠벨리(BESTI belli)는 채시라에서 이영애로

씨(SI)는 최진실에서 심은하로 교체하였고

미시층을 겨냥한 여성의류 크로와제는 이혜숙을 기용한다고 했으나

김지수로 바꾼 모양이다. 남성복 모두스 비벤디는 임성민이 그대로 모델이었다.


예전에 신원에벤에셀 관련글을 적을때

이영애와 심은하로 교체되었다고 적었지만

관련자료는 구하지 못해서 글만 올렸었다.

그러나 최근에 우연찮게 이 지면광고를 구해서

올리게 되었다. 세스띠는 화장품 브랜드였던가?


브랜드 이름은 기억에 있지만

어떤 제품의 브랜드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6. 1. 2. 19:31

1996년 LG그룹 1월 1일 컬러 지면광고


새 로고로 바꾼뒤 맞이한 첫해

정도를 지키겠다는 LG의 각오를 적은 지면광고다.


아래는 IMF를 맞아

절제와 용기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한번 뛰자는 내용이다.

1998년은 호랑이의 해인 관계로

호랑이가 광고 이미지로 쓰였다.


1998년 LG그룹 1월 1일 컬러 지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10. 14. 21:55

1999년 삼성상용차 1톤 트럭 SV110 지면광고


삼성그룹의 이건희는 자동차 사업진출을 위해서 김영삼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 쪽에

부지를 매입해 삼성자동차 공장을 짓는등 김영삼으로부터 사업승인을 받기위해 꽤나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당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우 쌍용 기아차 등 자동차 관계사 7개사는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에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광고를 내놓았지만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을 막을순 없었다.



1994년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을 반대하는 자동차 7개사의 반대성명광고


삼성은 승용차를 내놓기 전에 먼저 삼성중공업에서 1994년쯤 대형트럭 판매를 시작했다.
는 삼성자동차를 설립하기전인 1990년부터 지속적으로 상용차사업에 진출의지를 보였다.

1992년 상용차사업승인을 정부로부터 받았고 1994년 상용차사업에 먼저 뛰어들었다.

 


1995년 설립된 삼성자동차는 2년뒤인 1997년 첫 승용차인 SM5를 시판하기에 이른다.

허나 3.5.7시리즈를 BMW의 이의제기로 외국에서 사용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SM5 광고역시 벤츠의 광고 표절의혹이 일었다.

 

1995년 삼성그룹의 자동차사업자 모집 지면광고

1997년 삼성자동차 브랜드 네임공모 지면광고

 

삼성자동차와 상용차는 IMF 부채문제 기아차 인수실패등 여러가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삼성자동차는 르노에 인수되었고
삼성상용차 역시 야무진 이란 브랜드로 소형트럭을 내놓았지만 뒤처리가 깔끔하진 못했다.

다.

 

르노삼성자동차 로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20. 14:33

1989년 아디다스 adidas 제우교역 30% 세일 지면광고


과거 재벌계열사에서는 자동차 가전제품등을 수입하는 담당부서나

따로 회사를 만들어 수입하던 회사들이 있었다.


현대전자의 올림푸스 아남정밀 니콘

두산산업이 월풀냉장고를 수입 판매했듯이

제우교역 역시 도이칠란트의 아디다스 브랜드로 제품판매를 하였다.


요새는 아디다스라는 브랜드만 볼수있지

수입판매하던 제우교역이라는 회사는 볼수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제우교역이라는 회사가 존재하긴 하나

예전에 아디다스를 판매하던 그 회사하고는

이름만 같을뿐 다른회사다.


제우교역은 신발에 편중된 사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1990년대 초반 의류 양말등의 사업에 진출하였다


IMF 이후엔 별다른 소식은 접해볼길이 없었다.

과거 수입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하던 회사가

IMF이후 경영난 가중되어 계열사가 독립하여

한국 XXX로 사명을 변경해서 나오는 경우는 많이 봐왔다.

제우교역의 경우에도 그런 일이 발생한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디다스하면 가장 유명한 흰색과 어두운 파랑색이 겹쳐진

3선 슬리퍼가 인기였는데 짝퉁제품인 아디도스가 나올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경쟁을 하듯이 그때도 2개 브랜드가 경쟁하던건 비슷했다.


1995년 아디다스 30% 세일 제우교역 주식회사 지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7. 21:30

1994년 대우전자 디지털 피아노 벨로체 지면광고


1994년 3월 30일

대우전자에서 디지털 피아노 벨로체를 생산 판매에 들어갔다.

기존 피아노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무거웠던 반면

전기로 연주하는 디지털 피아노 벨로체는

가볍고 비교적 싼 가격에 구매할수 있는 제품이었다.



기존의 피아노 판매업체였던 삼익악기와 영창악기는

95년 삼익 아르떼 피아노와 영창 그린피아노등 신제품을 내놨고

이에 대우전자는 가야금 대금 굿거리 장단을 추가한 벨로체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시판 1개월만에 1천대가 판매되는등 판매폭증을 기록했다.


하지만 불어닥친 IMF의 바람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1998년 9월 전자업계 인력감축에

대우전자에서 벨로체 사업부만 따로 분사되었다.

지금도 업체가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재벌 대기업/잡담방2015. 9. 16. 20:42

1989년 동양그룹 지면광고


동양그룹

이양구 회장이 세운 회사로

시멘트와 제과로 일군 그룹을

사위 두명에게 그룹을 물려주게 되었다.


이양구 회장


이양구 회장은 함경남도 함주군 출신으로

부산에서 설탕도매업을 시작으로

자금을 모아 제과와 시멘트 사업에 진출했고

1983년 고혈압으로 쓰러저 1989년 타계였다.


그의 호인 서남재단도 설립한바 있다.


큰사위 현재현회장과 작은사위 담철곤 부회장


아들이 없이 딸만 둘이라

그룹을 2명의 사위에게 물려주었는데

첫째사위 현재현은 시멘트와 섬유 금융부문을

둘째사위 담철곤은 스낵과 식품부문을 경영하였다.

후에 담철곤이 동양제과와 오리온 프리토레이를 따로

분리독립해 오리온 그룹으로 재탄생하였다.





동양시멘트와 동양제과가 주축으로

동양시멘트에서 여러사업을 벌여 분리독립한 회사가

늘어나면서 동양매직 동양산업기계등 계열사를 늘려갔다.


1968년 동양제과공업주식회사의 마미 소프트 비스켙 지면광고

1968년 동양세멘트 공업주식회사 제품 별표세멘트 지면광고

1994년 동양산업기계 주식회사 지면광고

1996년 동양그룹 지면광고


1989년 불과 7개의 계열사를 두었으나

7년뒤인 1996년엔 22개의 계열사를 둔

대그룹으로 성장하였다.


금융계열사만 7개를 설립인수하여

금융부문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으나

2000년대 들어서 계열사 부당지원거래

투자자와 고객들에게 손실을 끼치는등 그룹해체로까지 이어졌다.


제조부문 - 동양시멘트 / 동양매직 / 동양산업기계 / 동양토탈


식품부문 - 동양제과 / 오리온 프리토레이


공익부문 - 서남재단


금융부문


동양증권 / 동양투자금융 / 동양생명보험 / 동양카드 / 동양할부금융

동양창업투자 / 동양투자자문 / 동양선물 / 동양파이낸스


무역 유통 건설부문


동양글로벌 / 동양해운 / 동양마트 / 동양시멘트 주식회사 건설


정보통신 - 동양SHL / 오리온 카툰네트워크


1996년 자산기준 재계서열 21위로

2조 8750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2. 12:22

1991년 7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여름 정기세일 지면광고


1991년까지만해도 주식회사 화인의 스포츠브랜드 상표

프로월드컵의 로고는 W를 형상화한것이었다.



그러나 아래 보이듯이 1991년부터는

농구공이 튀기는 모양을 형상화 시킨 로고로 바뀌었다.

반면 뱅가드의 상표는 1990년부터 변화가 없다.


광고를 올려놓고 보니

세일을 2개월마다 한셈이니 꽤나 자주했다.

자금사정이 안좋았던건가?


프로월드컵의 경우는 운동화와 스포츠브랜드 이미지가 강했다면

뱅가드는 캐쥬얼화 그리고 의류브랜드의 이미지가 있었다.

당시 캐주얼 브랜드로는 금강제화의 랜드로바와

에스콰이아의 영에이지 심플리트가 경쟁을 펼치고 있었는데

여기에 뱅가드도 가세를 한것


워낙 랜드로바 VS 영에이지의 경쟁구도가 쎘기 때문에

뱅가드는 인지도는 있었지만 판매량이

많았을런지는 모르겠다.


당시 랜드로바의 모델은 그룹 봄 여름 가을 겨울

영에이지 심플리트는 남자모델의 경우

박상원과 최재성 박형준 윤동환이 교체되면서 나왔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모델 황진아가 나왔었다.


광고가 꽤 코믹스런 분위기였는데

황진아 역시 인기가 있었는지

꽤 오랫동안 영에이지 시리즈의 모델로 나왔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기엄마가 되었다고..


프로월드컵 바뀐 로고 광고를 찾았기에 올려본다.


1991년 9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가을맞이 찬스세일 지면광고

1991년 11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겨울 세일 지면광고

1992년 4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러브세일 지면광고

1990년 8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전품목 정기세일 지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