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대기업/잡담방2015. 9. 21. 18:57

1996년 현대해상화재보험 김재박 현대유니콘스 감독 지면광고



현대그룹은 프로축구진출은 빨랐지만

프로야구 진출은 늦었다.


프로야구 출범당시 참여한 기업이

두산의 OB / 삼미 / MBC

롯데 / 삼성 / 해태 였다.


삼미는 청보에 인수되었다가 1987년 태평양 돌핀스를 거쳐

1995년 현대에 인수되었다.

현대는 1994년 11월 실업팀인 현대피닉스 야구단을 창단한지

11개월만인 10월 1일 현대 유니콘스 야구단을 창단하였다.

태평양 돌핀스 인수금액은 430억원이었다.


김재박은 현대유니콘스 감독에 부임한이후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

4차례 현대유니콘스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2000년 현대유니콘스 챔피언 엠블럼


1996년 창단한지 10개월만에 현대그룹의 계열사인

현대해상화재보험 지면광고 모델로 김재박이 나왔다.

LG트윈스의 감독을 할때 내려갈팀은 내려간다

DTD 이론을 펼쳤던 김재박.


김재박이 LG감독시절 상대팀에

대해서 한말이었으나


향후 10년 LG트윈스는 가을야구에

진출할수 없었고

공교롭게도 DTD는

4.5월에 반짝 상위권에 올라갔다가

이후 하위권으로 쳐지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해마다 보여줘

LG트윈스에 적용되는 말이 되어버렸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그것이 DTD

LG트윈스 야구팀 로고

MBC청룡


MBC청룡에서 선수생활을 거쳐

현대유니콘스 감독에 부임해

4차례 우승을 할때가 그의 전성기였다.


그것봐.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고 했잖아?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6. 18:34

1990년 빙그레 이라면 지면광고


농심 삼양 팔도에 이어

스낵과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던

빙그레도 라면사업에 진출했다.


한국화약그룹의 계열사이자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던 빙그레가

트로트 가수 주현미를 모델로 내세워

빙그레 라면 이라면 광고를

내보냈다.


CF 삽입곡은

주현미의 히트곡을 사용해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라는 부분을 차용했다.


1992년 빙그레는 최민수를 모델로 내세워

대용량 컵라면 캡틴을 출시했다.

팔도에서는 왕뚜껑을 1990년대 이미 만들었었고

빙그레도 이에 뒤질세라 대형 컵라면을 만들었던 것


대형이라곤 하지만 용기만 컷지

실제 라면은 그렇게 양이 많은것도 아니었다.

가격은 500원대였으나 얼마 안가 1천원이 넘어선걸로 안다.


1993년 빙그레는 캡틴 매운탕도 출시하였는데

이건 농심 신라면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것 같다.


1992년 빙그레 캡틴 컵라면

1993년 출시한 빙그레 캡틴 매운탕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스포츠2015. 7. 19. 18:30



한국일보사 계열의 일간스포츠가 1969년 9월 창간되었고 쭉 스포츠신문 시장을 독점해오다가

서울신문사 계열의 스포츠 서울이 1985년 6월쯤에 창간되면서 스포츠신문 경쟁시대가 열렸다.



보안사령관 시절의 전두환


서울신문은 YTN 연합뉴스와 같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관영언론의 입장이 강했기 때문에

전두환 신군부 집권기에 실세중에 실세였던 3허(허삼수 허화평 허문도)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었던 허문도가 3S정책(SEX SPORTS SCREEN)을 펼치는걸

전두환에게 건의 대중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는 우민화 정책을 펼침에 따라

프로야구의 개막과 활성화가 되었고 거기에 맞물려 스포츠서울도 창간되었다.

(허화평과 허삼수는 군인출신도 아니고 쿠데타에 참여하지도 않던 조선일보 출신의 허문도가

전두환에게 발탁되어 자신들과 함께 3H라고 묶여서 불리는것을 상당히 싫어했다.)



 

 


 


허화평

허삼수

허문도

5공 정권의 실세였던 세사람



게다가 조선일보사에서 1990년 3월에 스포츠조선까지 창간하면서

오랫동안 3사 경쟁체제가 되었다.


1980년대까지만해도 신문면이 아무리 많아봐야 16면에서 24면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32면을 넘어서고 컬러TV방송시작과 컬러면이 많은 스포츠 신문이 창간되더니

통제와 검열이 강했던 성에 대해서 1990년대 들어서 빗장이 풀어졌다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소설 연예인 복장 심지어 광고(700 전화광고)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꽤 많이 풀어졌다.

스포츠 신문 3사의 선정적 컨텐츠 경쟁이 심해져서 오죽하면 공중파TV에서

황색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책을 세우자는 토론까지 벌어졌을 정도였다.



1992년쯤 샤론스톤이 주연한 원초적 본능이 개봉되면서

적어도 외부적으론 성에 대해 보수적입장이 상당히 많이 걷혀버렸다는걸 알수 있다.

예전같으면 검열에서 다 삭제되어 알맹이 없는 영화가 되어버릴 이 영화

아니면 수입단계에서 이미 저지당했을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까지 한걸보면..


원초적 본능은 일주일만에 관객 10만명이 돌파하는등 당시로썬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때는 100만명만 돌파해도 대기록에 올라갈 때였으니 더이상 말이 필요하겠는가?


1993년들어서 태평양 아모레 화장품에서 이병헌과 김원준 신은경을 내세워

아모레 트윈엑스라는 화장품을 출시하고

이전 세대와는 다른 나를 표현하면서 X세대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에 맞춰 언론에서도 신세대인 X세대를 다루었고

내일은 사랑 출연으로 인기를 얻은 이병헌

SBS 인기가요에 유독 출연이 많았던 김원준

시기는 늦지만 MBC 드라마 종합병원에 출연한 신은경

도 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






일간스포츠는 2000년대 중후반 한국일보사와 문제가 생겨

중앙일보사로 이적하는등 꽤 충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국민일보 계열의 스포츠 투데이(스투닷컴)가 창간하면서 스포츠신문은 또다시 격변에 휘말렸다.

동아일보의 스포츠동아 경향신문의 스포츠칸(후에 스포츠경향으로 바뀜)까지 가세하면서

쇠락해가는 스포츠 신문의 경쟁(인터넷과 PC방의 보급)은 더욱 가열되었지만

그 결과는 글쎄.. 모르겠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