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신문잡지2016. 6. 18. 09:31

1996년 현대전자 시티맨 지면광고


예전에도 글을 올렸지만

PCS가 서비스되기 1년전

시티폰이라는 서비스를

KT(한국통신)를 비롯한 3개업체에서 서비스한바있었다.


현대전자에서는 시티맨이라는 휴대폰을 내놓고

나중에 박상원을 모델로 기용

광고를 시작하였다.

컨셉은 007를 차용하여

총구에서 제임스본드가 총을 쏘듯이

박상원이 검정색 양복을 입고

엄지검지로 시티맨을 들고 있는 장면이었다.


제품을 이용한적은 없지만

광고만큼은 기억에 남아있었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6. 1. 9. 21:30

1999년 한국통신 코넷 지면광고


1999년은 초고속인터넷업체들이 한창 광고전을 펼치고

PC방이 생겨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인기를 끌던 시기


1세대 프로게이머라고 할수 있는

쌈장 이기석을 모델로

한국통신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코넷CF를 만들었다.


스타크래프트의 장엄한 음악인

아리아를 BGM으로

수많은 레이스들이

하늘을 날라다니는 모습은

볼만한 광경이었다.

테란 플레이어였나?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5. 19:06


1997년 한국통신 시티폰 지면광고


국가 기간통신 사업자로써

한국통신이 시티폰은 1997년 3월에

PCS는 10월에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한국통신 로고


시티폰은 서울이동통신 나래이동통신과 수도권에서 경쟁하였고

PCS는 한솔PCS LG텔레콤 SK텔레콤 신세기통신과 경쟁하였다.

시티폰 사업은 PCS가 등장한 이후엔 그 효용성이 떨어져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한솔 PCS    LG텔레콤 한국통신프리텔 로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3. 18:29

1997년 서울이동통신 서울 시티폰 지면광고

1997년 서울이동통신 맥아더를 모델로 세운 서울 시티폰 지면광고


삐삐 서비스로 인기를 모았던

서울이동통신과 나래이동통신이

한국통신과 함께 시티폰 사업자로 선정되어

수도권에서 한판 격돌을 벌였다.



한국통신이 전국구라는걸 내세워 광고를 게재하자

서울이동통신과 나래이동통신을 이에 반발하였고

지방 시티폰 사업자들 역시 한국통신에 항의를 하게 되었다.


서울이동통신의 광고에서 볼수 있듯

서울사람은 서울 시티폰 이라는 광고문구를 내세워

경쟁자인 나래이동통신은

서울을 뺀 나머지 수도권에서 사업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버렸다.


현대전자에서도 이때에 맞춰

박상원을 모델로 내세워

시티맨이라는 전화를 선보였다.


한국통신과 나래이동통신의

시티폰 광고는 따로 올려보도록 하겠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8. 29. 16:28

1994년 015 나래텔 나래이동통신 지면광고


무선호출기(삐삐) 서비스가 시작되고

삼보컴퓨터 자회사인 나래이동통신의 015나래텔과

단암산업의 서울이동통신이 수도권에서 삐삐서비스 경쟁을 벌였다.


숫자 4자리?로 여러가지 의미를 보냈던 이용자들

몇년후 PCS시대가 다가올줄 생각이나 했을까?

1996년 매출 1200억어원에 경상이익 306억원을 바라볼정도로

무선호출기 사업은 의외로 이익이 높았다.


SK가 인수한 한국이동통신은

삐삐 012서비스를 내놓고 있었다.


이들 사업자는 나중에 시티폰을 통해 격돌하는데

한국통신과 나래이동통신 서울이동통신

3개사가 경쟁하였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8. 13. 17:47

1968년 대한석유공사 유공 지면광고


1962년 설립된 공기업이었던 대한석유공사 약칭 유공이

1980년 11월 29일 민영화가 되면서 선경그룹에 넘겨졌다.


박봉환 동력자원부 장관은

국영기업의 비능률 배제, 책임경영확립을

위해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밝히며

과거 걸프가 가지고 있던 지분 50%를

671억 7천만원을 연말까지 납부하는 조건으로

선경그룹에 유공을 넘겼다.


박근혜와 이명박이 틈만나면 알짜기업 민영화 추진하면서

하던 말이 저거 아니던가?

아무튼...



19년뒤인 1999년 기사로 밝혀지는 이 사실은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이

1994년 전두환과 골프를 치면서

유공 불하과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전두환이 "그때 유공을 선경에 넘기도록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이던 노태우야

나도 당시엔 잘 몰랐어" 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1980년 5월에서 9월까지 동력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유양수 역시 '공직과 소신'이라는 기고문에서.

"80년 6월 중순 모처에서 유공 민영화 제의를 받았으나

당시 유공지분 50%를 소유한 걸프사 지분을

전량 정부가 인수해 국유화 하는것이 최우선책"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의 신문에서도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


훗날 노태우와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은 사돈을 맺는데

노태우 임기말년인 1992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리던

한국이동통신 민영화를 추진하였고

이 역시 사돈기업인 선경그룹에 인수된다.

한국이동통신 로고

한국통신 로고


한국통신의 자회사였던 알짜기업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을 사돈인 선경그룹에 넘기고 김영삼 정부 때

전두환과 함께 비자금 4천억의 주인공이 된 노태우

이중에 선경그룹으로부터 흘러들어간 돈은 얼마나 될까?

SK그룹 로고


SK텔레콤 로고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수사 당시 전경련회장이던 최종현이 대국민사과문 발표를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1999년 12월 16일 경향신문

1999년 12월 16일 동아일보

1999년 12월 16일 매일경제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7. 28. 19:04

1997년 10월 1일

SK텔레콤 011과 신세기 통신 017

2개사가 경쟁한던 이동통신 서비스에

한국통신프리텔 016 한솔PCS 018 LG텔레콤019가 가세해

5개사가 경쟁하는 접전이 벌어졌다


아래는 1997년 10월 1일 이후 PCS 3사가 게재한 지면 광고들이다

한국통신프리텔은 칼라판 전체광고를

한솔PCS는 양면의 흑백광고를

LG텔레콤은 신문 1페이지 칼라 하단광고를 실는 전략을 택했다.


한국통신 프리텔은 016 개통절

한솔PCS는 국민들의 귀가 시원해지는 원샷 018

LG텔레콤은 약속을 지키는 반가운 019 PCS

를 광고문구로 내세우며 홍보를 하였다.


이에 질세라 SK텔레콤과 신세기 통신도 방어광고를 게재하였는데

SK텔레콤은 추석대비 교통정보 서비스 제공을 내세워 SKT선택이 현명하다는걸 강조하였고

신세기통신은 세계 최단시간 100만가입자 돌파를 내세워 광고하였다.


SK텔레콤의 첨단교통정보 서비스를 내세운 011 광고

최단기간 100만고객 돌파를 강조한 신세기통신 017 전체지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재벌 대기업/잡담방2015. 7. 28. 11:29

1996년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이 PCS 사업자 선정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주식회사 에버넷을 설립하고 전체지면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사상초유의 한국 재계 1-2위를 다투는 현대와 삼성이

연합기업을 탄생했다는건 놀라운 사실이었다.

정부의 4대그룹중에선 1개 사업자만 뽑는다는 방침에 따라

PCS 사업을 각자 추진하던 현대와 삼성이 연합을 하게 된것이다.



현대 삼성의 에버넷과

LG그룹의 LG텔레콤이 격돌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LG정보통신이 주도한

LG텔레콤이 PCS 사업권을 따내게 되었다.

이후에 LG는 데이콤 지분을 정리해야했으나

일부분만 정리하고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3사가 합병한 LG 유플러스에 흡수되었다.


PCS 사업권 획득 실패이후에

삼성그룹은 후에 이용가치를 고려해서 에버넷의 존속을 바랬으나

현대그룹에서는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다면서 청산하기로 하였다.


PCS 사업자 선정시 정보통신부 장관은 후에 KT회장을 지낸 이석채였다.

나중에 한솔그룹과 LG그룹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삼성의 분가기업인 한솔그룹의 한솔 PCS가 018을 따냈다

마지막으로 한국통신의 한국통신 프리텔이 016을 따냄으로써

이동통신은 5개사 경쟁 체제로 가게 되었다.




SK그룹의 한국이동통신

코오롱과 포철의 신세기통신이

017서비스를 1996년 4월 1일부터 시작했고

나머지 3개사가 1997년 10월1일 들어서 경쟁에 돌입했는데

주로 아저씨들이 쓰는 번호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011의 한국 이동통신은 사명을 SK텔레콤으로 변경후

2천년대들어 TTL이라는 브랜드로 젊은 고객층을 끌어왔다.


아무튼 사상 초유의 연합기업을 세우면서까지

경쟁관계를 접고 뭉친 현대와 삼성이 PCS 사업권 따내기에서

고배를 마신건 이례적이다.


이건 정부에서 4대그룹 중 한개 사업자만 뽑는다는 발표를 하기전의 상황이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현대전자 로고


자산 총액 국내 1위를 지켜왔던 현대그룹

삼성그룹과 업계 수위를 다퉈가면서 중공업 자동차 전자 건설에 이르기까지

업계 1.2위를 치열하게 다툰 현대와 삼성

주로 중후장대 산업을 했던 현대에서 전자산업에 뛰어든다고 했을때

업계에선 놀라는 분위기였다.


고 정몽헌 회장이 의욕적으로 설립한 현대전자산업

1983년 설립해 컴퓨터(현대 솔로몬) 전화기 반도체 LCD 게임기(현대 컴보이)

PCS 3사(한국통신 프리텔, 한솔PCS, LG텔레콤)가 진출한 이후엔 휴대전화(현대 걸리버)까지 진출하여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와 함께 전자업계 4사 경쟁체제를 이루었다.




1995년 현대전자에선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미래쇼크를 저술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를 모델로 초청 강연을 열었다.

당시 안경 쓴 남자와 함께 등장한 앨빈 토플러의 현대전자 광고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때 등장한 캐치프레이즈가 멀티미디어의 뉴 프론티어 현대전자 였다.

창립 12주년을 맞아 새롭게 도약하러던 현대전자의 의지를 볼수 있었다.

IMF 이후 빅딜로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합병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왕자의 난 이후 부채문제로 쇠락해 가던 현대전자는

LCD 컴퓨터 (현대 LCD, 현대 멀티캡)사업분사 반도체 사업만 남은 뒤 사명을 하이닉스로 바꾸고

일본계 기업에 인수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몇년후 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기업은 LG그룹도 LG전자도 아닌

SK그룹이었다. SK그룹에서 인수한 이후 사명을 SK하이닉스로 바꾸고

사상 최대 이익을 남기기까지 하였다.




LG 그룹에선 왜 하이닉스를 인수하지 않았을까?

전자 부분에서 수직계열화를 이뤘지만 빅딜로 울며 겨자먹기로  LG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넘기게 되어

당시 통탄의 눈물을 흘리며 구자경회장이 정주영회장을 원망까지 했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요새 LG가 휴대폰 부문에서 죽을 쑤는것도 하이닉스 반도체를 인수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현대전자산업 - 현대전자 - 하이닉스 반도체 - SK하이닉스

로 사명을 변경해온 현대전자





이 회사의 로고는 1993 - 1995년 사이 바뀐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삼성도 그룹차원에서 로고가 바뀌었다.

공교롭게도 이 두 거대 회사의 로고가 길쭉한 형태의 비슷한 영문알파벳 로고라

어쩌면 이렇게 경쟁그룹이 비슷하게 로고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 생각하면 두 회사의 로고를 디자인한 업체들이 다양성이 부족했다.




하이닉스 반도체 LG그룹이나 현대차그룹에서 인수하길 바랬지만

SK그룹에서 인수한것도 나쁘진 않은것 같다.

SK도 전자업체 하나 설립해서 휴대폰시장에 다시 띄어들거나

TV 냉장고 시장에 진출하면 좋을텐데...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Music방/CF BGM / Pop2013. 11. 30. 16:43

로비 윌리암스 - Supreme

 

테이크뎃이란 그룹의 멤버로

탈퇴후 솔로활동을 벌이는 가수라고 한다.

 

나도 팝송좀 들었던 터라 테이크뎃이란 그룹은 귀에 익었다.

출생년도로 보건데 꽤 어린나이에 그룹활동을 시작했구나

이 노래는 한때 LG텔레콤(현 LG U+ / LG 유플러스) 카이(Khai) CF BGM으로 쓰였었다.

 

당시엔 SK텔레콤(011)과 신세기통신 (017)

PCS 3사 한국통신프리텔 (016 KTF 현 KT에 합병)

한솔 PCS (018 한솔 M닷컴으로 사명 변경후 KTF에 합병)

LG 텔레콤 (019)등 5개의 이통사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때라

광고분야에서도 어떻게든 튀어보이려고 애쓰던 시절이었다.

 

원래는 이 노래가 아니라 피파관련곡을 찾다가

이게 검색창에 나오길래 들어봤는데

쫗아서 올려본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