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제일제당 솔의 눈 컬러 지면광고 솔싹 추출물로 만든 솔의 눈게토레이와 함께 즐겨먹던 음료인데맛은 모르겠지만 소나무 향은 확실히 났었다. 음료사업을 롯데칠성음료에 매각하지 않고해태음료를 성공적으로 인수했다면제일제당은 음료사업을 계속 벌이고 있었을까? 롯데칠성음료의 독주체제가 너무 공고화 되는것 같아 별로다. 음료시장에 진출해 있던 기업들이제일제당 동아오츠카 동서식품 일화 웅진식품 미원 해태음료 롯데칠성 코카콜라 유통4사 (두산 / 범양 / 우성 / 호남식품) 정도됐었는데지금 살아남은건 롯데칠성 동아오츠카LG생활건강에 인수된 코카콜라보틀링과 해태음료 동서식품 정도다. 소비자 입장에선 다양한 업체들이경쟁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야 이득인데..
1994년 5월 31일 카스맥주 지면광고진로 쿠어스 맥주의 카스 맥주 공개 하루전날 광고다. 1994년 진로쿠어스맥주의 카스맥주 양쪽지면 칼라광고 6월 1일 오늘을 맥주의 날로 선포합니다 1994년 6월 1일 프래쉬맥주 카스의 살아있는 맛 직접 체험해보십시오 1994년 6월 1일 진로그룹의 진로쿠어스맥주가카스맥주 공개광고를 4면에 걸쳐 합으로써경쟁사인 하이트맥주와 OB맥주의 대응에 관심이 갔다. 진로쿠어스는기존 맥주는 열 처리한 맛없는 맥주라는 것을 부각시켰고, 그에 비해 카스 맥주는 열처리를 하지 않은 신선한 맥주라는걸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광고를 하였다. 6월 2일 에도 카스는 칼라 2면에 걸쳐 전체지면광고를 내는등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폈는데 이에 대응 광고를 낸건 1페이지 전체지면의 하이트맥주하이트..
1991년 조선맥주 주식회사 크라운 드라이 마일드 지면광고 1991년 두산계열사 동양맥주 OB캔맥주 지면광고 하이트 맥주가 나오기 전엔 조선맥주는 크라운 드라이 마일드 노주현을 모델로 썼고동양맥주는 OB맥주 만화가 이현세를 모델로 썼었다.시장점유율은 OB맥주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고열세인 조선맥주는 물이 다른 맥주를 내세워 하이트를 들고 나왔다. 당시 방송되던 드라마 아들과 딸 한석규를 모델로 내세웠고천연암반수로 만든다고 광고하던 하이트 맥주의 인기는 높아져1993년엔 10대 히트상품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하이트 맥주는 서울의 달 출연진을 포함에 여러 연기자들을 내세워단체전광고를 벌였고, 이에 맞서 OB맥주는 아이스(ICE)를 강수연을 모델로연속 전체지면 광고를 내보내 맞섰다. 이들은 물전쟁으로 상..
1978년 1월 1일 한라의 현대양행 전체지면 광고 1978-9년 1월 1일 한라그룹의 현대양행 / 한라건설 / 한라엔지니어링 공동광고 이 광고의 문구를 보면 자신의 미래를 예견했음인가? 한국중공업을 선도하는 현대양행은 올해에도 열심히 일하겠읍니다.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정권의 산업일원화 조치에 따라현대양행은 대우의 김우중에게 강제인수되려다가김우중이 2천억을 융자해달라는 인수조건을 붙이자 신군부는 니들에게 2천억 지원해줄바엔차라리 국가에서 경영하겠다하여 사명을 한국중공업으로 고치고공기업화시켰다. 1977년 설립한 인천조선 주식회사가1990년 상호를 한라중공업으로 변경하여1998년 부도를 낸 이후 현대중공업에 인수되었다. 한국중공업은 1981년 대규모 적자를 보다가1985년 이후부터 흑자전환하였다.19..
1989년 6월 해태음료 밀크탄산음료 크리미에 홍콩영화배우 왕조현을 모델로 세운 지면광고 한국에서 코카콜라 제품을 판매하는 4개사 두산식품 / 범양식품 / 우성식품 / 호남식품에서밀크탄산음료 암바사를 1984년 첫 출시했다 탄산에 우유를 첨가한 기발한 제품이었는데그동안 판매가 부진하다가 1987년들어콜라 사이다가 판매부진을 겪고 보리음료와 암바사가 매출신장을 기록하자해태음료 롯데칠성음료가 뛰어들어 경쟁에 가세하였다. 보리와 밀크탄산음료시장에 뛰어들었는데보리음료는 나중에 다룰것이니 패스하고밀크탄산음료는 해태는 크리미 왕조현을 모델로롯데칠성은 밀키스 주윤발을 모델로 내세워제품경쟁뿐만 아니라 모델경쟁도 치열했다. 왕조현이 크리미 모델을 할때 노래하는 장면은 왕조현의 목소리 그대로 썼지만멘트를 하는 장면은 KB..
1990년 10월 한라그룹 신입사원 모집 지면광고 한라그룹창업주는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동생이자 둘째인 정인영이다.정주영과 정인영 정인영은 일본 유학후 귀국 동아일보 기자로 지내다가1953년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재직하였다이후1962년 만도기계와 현대양행(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설립1978년 한라시멘트 1981 한라건설을 세운뒤1984년부터 한라그룹 회장에 취임하였다.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신군부의 산업합리화 조치에 의해중공업과 자동차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정주영과 김우중에게 강요했던 모양이다.정주영은 자동차를 택했고 김우중은 중공업을 택했으나금융권에서 2천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신군부에 요청했다.신군부는 2천억원을 지원해 주느니 차라리 공기업화 시킨다며한국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시켰다. 이 내용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