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금성사 소형 액정 TV 금성포키 1988년은 88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해기존 라디오에 TV수신기능과 액정을 붙여놓은듯한소형 휴대용 TV 금성포키 3.3인치에서 2.0인치까지 총 5가지 모델을 내놓았다.한때 상당히 가지고 싶었던 전자제품중에 하나였다.지금처럼 DMB 달린 스마트폰 시대로 본다면 별로 신기하지않겠지만 항상 크고 두꺼운 브라운관만 보다가저렇게 휴대용으로 소형 TV를 가지고 다닐수 있다는점이당시엔 꽤 매력적인 포인트였다. 공간 많이 차지하던 CRT 모니터만 보다가얇은 LCD 모니터가 나왔을때의 놀라움이랄까? 중간급 모델인 금성포키 CN-2000 가격이 166,000원이었다. 세로형 모델 금성포키 CN-330 3.3인치 액정칼라화면 218,000원 / CN-270 2.7인치 액정칼라화면..
1999년 삼성전자 마이젯 전지현 지면광고 1998년 김규리를 모델로 내세운 한국엡손 프린터 CF에 대항해서 1999년 전지현을 모델로 내세운 삼성전자 마이젯 CF는 당시 남자시청자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흰옷을 입고 여자로썬 소화하기 힘들다시피한 댄스에 섹시함을 곁들여 춤추는 전지현의 모습은 연예프로그램에서 취재를 나갈 정도로 화제였다. CF BGM으로 쓰인 곡은 아모크의 666이란 곡으로 테크노열풍의 서막이 되었다. 전지현의 모델로 나온 마이젯 프린터의 판매량까진 알수 없지만 이 CF의 여파로 전지현의 팬이 된 남성들이 꽤 많았던걸로 알고있다. 2000년 들어 인터넷 포털사이트중에 하나였던 네이버가 전지현을 모델로 치고 나온 전략도 주효했던지 단숨에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 마..
1999년 한국엡손 김규리 컬러 지면광고 오늘 블로그 방문자 검색유입 단어에엡손 김규리가 떠서관련광고를 찾아서 올린다. 1999년 당시엔 삼보컴퓨터로 유명한 삼보그룹의 계열사였던 한국엡손에서김규리를 내세워 대대적으로 광고전을 12월부터 시작하였고이에 대응해서 삼성전자에서는 신인이었던 전지현을모델료 기용해 프린터 광고전을 펼쳤다. 예전에 올린글에서도 적었지만1998년 5월 개봉한 공포영화 여고괴담의 인기로화장품, 프린터, 스포츠드링크 제과 등의 CF를 꿰차고차기 영화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던 김규리 지면광고와는 다르게 TV CF는검은색 배경에 검은색 옷을 입고 나온 김규리가컬러로 변하면서 활짝 웃는 영상이었지만관련 광고동영상은 올라온게 없다. 프린터 시장에서EPSON, 삼성전자, 롯데캐논, 한국휴렛팩커드가경쟁..
1998년 대상 로즈버드 원두커피 컬러 지면광고 과거에 커피시장에서의 경쟁은동서식품의 맥심 맥스웰, 롯데칠성의 레쯔비 네슬레와 코카콜라사의 합작사 CCNR의 네스카페를 판매중이었던 두산식품그리고 주식회사 미원도 대상으로 변경한뒤에 판매했던 커피브랜드 로즈버드가 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이 외에도 유제품 업체인 서울우유 남양유업 매일유업등도 속속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동서식품 맥스웰 캔커피 카페오레 블랙터치 조미료를 판매하던 대상그룹에서 캔커피시장에 참여한건 90년대 전후로동서식품의 독점하다시피 해온 커피시장에롯데칠성과 주식회사 대상, 그리고 식품분야에 사업영역이 쏠린 해태음료와 두산그룹의 두산식품이 뛰어들었다.서울우유를 제외한 유제품업체의 참여는 조금 늦은 90년대 후반쯤 뛰어들어서전반기엔 위 5 - 6개 ..
내딸 금사월 24화 중에서 오혜상역의 박세영 어제 방송되었던 내 딸 금사월에 대해 이야기할건 크게 3가지그중에서 2가지는 이글에 적도록 하고나머지 하나는 따로 적도록 하겠다. 1. 오혜상역의 박세영이 입은 옷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2. 극 초반에 금사월역의 백진희가 귀엽게 나와서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딱 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백진희는 데뷔작이라고 할수 있는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부터 봐왔고하지원과 같이 기황후에 출연했다가이 드라마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박세영은 우리 결혼했어요와 광고를 통해 잠깐 보다가이 드라마를 통해 다시보게 되었는데어제 박세영이 입고 나온 의상도 예뻣지만의상의 색과 머리색 은은한 햇빛까지의 조화가 잘 이루어졌기에 올려본다. 막장드라마에 전작인 왔다 장보리 + 아내의 유혹..
1999년 삼성상용차 1톤 트럭 SV110 지면광고 삼성그룹의 이건희는 자동차 사업진출을 위해서 김영삼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 쪽에서 부지를 매입해 삼성자동차 공장을 짓는등 김영삼으로부터 사업승인을 받기위해 꽤나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당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우 쌍용 기아차 등 자동차 관계사 7개사는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에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광고를 내놓았지만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을 막을순 없었다. 1994년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을 반대하는 자동차 7개사의 반대성명광고 삼성은 승용차를 내놓기 전에 먼저 삼성중공업에서 1994년쯤 대형트럭 판매를 시작했다. 이건희는 삼성자동차를 설립하기전인 1990년부터 지속적으로 상용차사업에 진출의지를 보였다. 1992년 상용차사업승인을 정부로부터 받았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