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TV 동영상2016. 1. 30. 23:52

1991년 대림 선 맛살 CF


수산물가공업체 대림

오양 동원 사조등과 경쟁하다가

경영권 분쟁때문이었는지

오양수산과 함께 2006년 사조산업에 인수된 회사다.

사조와 동원 2강 체제


대림 선 로고가 여러 음식들을 지나는 화면과

CF BGM으로 깔린 곡이 당시로썬 특별히 눈에 띄던 광고였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6. 1. 24. 22:06

1991년 대현 씨씨클럽 가격인하 지면광고 (모델 /장서희)


나산실업의 조이너스 꼼빠니아

신원에벤에셀의 베스티벨리 씨

대현의 마르조 페페 씨씨클럽이

여성복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빙그레 전속모델로 얼굴이 알려진

장서희를 씨씨클럽의 모델로 내세웠다.


1994년 단일브랜드로 1천억원을 돌파한 조이너스가

1995년 1위자리를 고수하고 있었고

2.3위를 차지했던 베스티벨리와 씨의 추격전

대현의 3개브랜드 마르조 페페 씨씨클럽도 모두합쳐서 매출 1천억원대를 넘어섰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기타관심사/잡담방2016. 1. 21. 22:27

Bolivia Lake Poopo (볼리비아 포포 호수)

위에 보이는건 말리버린 호수와 덩그러니 남은 배라고 한다.

예전엔 이렇게 물이 많았으나 오른쪽을 보면 수량이 줄어든 현상을 볼수 있다.

1991년경의 포포호수 사진과 2010년 사진


오늘 다음 인터넷 신문기사글 보니

말라버린 볼리비아 포포호수라는 제목과 사진만 올라와 있었다.

호수가 말라버린 원인은 밝히지 않은채

기사를 읽는 사람의 의문점은 직접찾으라는 것처럼...


댓글을 살펴보니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엘니뇨 현상에 의한 가뭄으로 인해 안데스 산맥의 빙하가 줄어들어서 그렇다는 이유와

근처에 농부와 광산에서 물을 많이 쓴다는 의견이 적혀있었다.


산업화의 문제점인가?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8. 21:52

1991년 3월 22일 두산전자가 페놀 낙동강 방류사태가 벌어진 이후 사과광고를 올렸다.




1991년 페놀 방류사태이후 낸 사과 광고의 내용은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두산전자 공장 외부에 설치된

페놀 원료탱크로부터 공장안으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 중

지하매설부분에서 뜻하지 않은 유출사고가 발생


수용성이 강한 페놀이 낙동강으로 흘려들었다는 설명과

사고의 원인을 제거하였다는것과

상수원이 원상회복되도록 노력을 귀울이겠다는게 요지다.


고의성은 없었다는것과 현재는 사고의 원인을 제거

원상회복에 노력하겠다는것이 요약

1991년 3월 22일 두산 규탄 확산


하지만 이 사고 이후 페놀을 방류하는 사태가 다시 발생하였다.


페놀 낙동강 방류사태후

영남권에선 대대적으로 두산 전 계열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졌으며

대표적으로 코카콜라와 관련제품 OB맥주

버드와이저 KFC 동아출판사 한국네슬레 등의

제품들이 주된 불매 대상이었다.


1991년 3월 27알 두산 제품 품목정해 불매. 주부클럽 결의 참여호소

1991년 3월 24일 두산 창업이후 최대위기 한숨

2백억 기부금 싸고 청와대 종용설 나돌아. 오염기업 낙인땐 끝장 시설점검 호들갑


두산은 대구 영남지역의 주민들에 대한 피해보상 외에

대구시에 200억월을 기부하겠다는 제스춰를 취했다.


4월 2일 두산 페놀방류 고의적

보사위 조사 대구 환경청장 비밀배출구 시인

페놀공포 당국도 못믿는다. 낙동강 연안 천만 주민 재유출에 경악 분노

두산 페놀 수원지 오염

4월 24일 페놀이 재 유출된 이후 기사

두산 정신있나 없나 2시간동안 사고 은폐

1992년 7월 두산 페놀방류 첫 시인


1년 4개월만에 비밀배출구로 폐수를 무단방류했다는걸

두산전자가 시인했다는 기사

두산전자는 그동안 고의성 여부가 없다며

재판을 벌였으나 소 취하를 통해서 이를 시인했다는게 내용이다


페놀 방류 4년뒤 1995년 94.95 2년연속 환경관리 국내 1위를 내세우는 두산그룹 지면광고

1994년 동양맥주 주식회사(OB맥주) 4개 공장 환경모범업체 선정

환경처와 조선일보 공동주최 94 맑은물 부문 환경대상을 수상했다는 지면광고


페놀 방류사태이후

사고 수습을 위해 사과광고를 내었지만

고의성은 없었다는게 광고의 주 목적


200억원의 기부금을 내놓고

사건처리를 잘(?)하는듯 싶었으나

페놀을 다시 유출했고 고의성 여부에 대한 불복으로 재판을 벌이다가

스스로 소 취하하고 4년뒤 환경모범업체 선정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두산그룹의 모습을 보니 참 씁쓸하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2. 12:22

1991년 7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여름 정기세일 지면광고


1991년까지만해도 주식회사 화인의 스포츠브랜드 상표

프로월드컵의 로고는 W를 형상화한것이었다.



그러나 아래 보이듯이 1991년부터는

농구공이 튀기는 모양을 형상화 시킨 로고로 바뀌었다.

반면 뱅가드의 상표는 1990년부터 변화가 없다.


광고를 올려놓고 보니

세일을 2개월마다 한셈이니 꽤나 자주했다.

자금사정이 안좋았던건가?


프로월드컵의 경우는 운동화와 스포츠브랜드 이미지가 강했다면

뱅가드는 캐쥬얼화 그리고 의류브랜드의 이미지가 있었다.

당시 캐주얼 브랜드로는 금강제화의 랜드로바와

에스콰이아의 영에이지 심플리트가 경쟁을 펼치고 있었는데

여기에 뱅가드도 가세를 한것


워낙 랜드로바 VS 영에이지의 경쟁구도가 쎘기 때문에

뱅가드는 인지도는 있었지만 판매량이

많았을런지는 모르겠다.


당시 랜드로바의 모델은 그룹 봄 여름 가을 겨울

영에이지 심플리트는 남자모델의 경우

박상원과 최재성 박형준 윤동환이 교체되면서 나왔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모델 황진아가 나왔었다.


광고가 꽤 코믹스런 분위기였는데

황진아 역시 인기가 있었는지

꽤 오랫동안 영에이지 시리즈의 모델로 나왔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기엄마가 되었다고..


프로월드컵 바뀐 로고 광고를 찾았기에 올려본다.


1991년 9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가을맞이 찬스세일 지면광고

1991년 11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겨울 세일 지면광고

1992년 4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러브세일 지면광고

1990년 8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전품목 정기세일 지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1. 19:25

1991년 한국 소련 수교 기념 금 은 메달리온 지면광고 (4월 24일 - 5월 9일)

1991년 4월 한국 소련 수교 기념 금 은 메달리온 지면광고

한정수량으로 소련 정부에서 제작한 목걸이와 주화를 팔았는데 주화의 경우 금화는 168만 - 38만원대 은화의 경우 48만원 - 76만원대

한소 수교기념 금은 메달리온


1990년 9월 노태우 정권들어 한국과 소련이 수교하였다.

북한의 김일성 정권 1950년 한국 전쟁이후로

오랜 기간 적국이었던 소비에트 연방(소련)과

수교를 하게된 역사적인 날로

양국간 수교를 한 이듬해 4월

한 소 수교기념메달을 남교물산에서

4월24일부터 5월 9일까지 한정판으로 판매하였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아

동서 화합의 제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고

마침내 소련의 올림픽 참가라는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1989년엔 동구권으로 분류되던 헝가리와도 수교를 맺게 되는데

소련과의 협의를 거친듯 하다는 프랑스 르몽드지의 보도도 있었다.


한국의 소련과의 수교 노력은 1988년부터 있었는데

소련의 거부로 수교노력이 두차례 무산되었다가

1990년 9월30일 한소 수교를 이루어냈다.


역대 정권들이 자신의 임기내에 뭔가 치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한걸 본다면 노태우 정권때는

한소 수교 한중 수교 정도를 이뤄냈다고 할수 있겠다.


한국과 소련이 수교를 시도하는 동안

북한의 김정일은 소련에 항의하였고

한국과 소련이 수교를 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북한은 일본과 수교하였다.


최호중 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9월 30일 낮 뉴욕 유엔본부에서 양국간 수교에 합의하는 공동코뮈니케에 서명한뒤 담소를 나누고 있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0. 18:09

1991년 코카콜라 지면광고


주로 피자와 치킨 햄버그등

고기류와 같이 먹게되는 코카콜라


이례적으로 코카콜라는

한국의 명절을 맞아

우리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코카콜라

라는 문구로  지면광고를 진행한다.



기존에 TV에서 나왔던

코카콜라 CF는

지금 본다면 약간 촌스럽지만

당시엔 그 어느 광고보다도

돋보이고 세련되어 보이던

광고들이었다.


뭔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하나의 멘트를 전달해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전 세계에선

압도적으로 펩시를 눌렀지만

한국에선 롯데칠성과 사이다 시장에서

힘겨운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콜라시장에선 여전히 롯데칠성의

펩시를 따돌리고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4. 19:14

1991년 백양 BYC 지면광고


80 - 90년대 속옷시장은

쌍방울의 트라이(TRY)

태창의 빅맨(VICMAN)

백양 BYC가 점령했다.


트라이는 이덕화를 빅맨은 노주현을

BYC는 유인촌을 모델로 기용했다.


KBS2 TV 주말드라마 사랑의 굴레 주인공 김미숙과 고두심

고두심의 언니역인 순천댁과 남편역인 노주현


이덕화와 노주현은 MBC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고 후에 노주현은 고두심과 함께

KBS2 주말드라마 사랑의 굴레에 주연으로 열연했다.

잘났어 정말 ~고두심이 유행어가 된 드라마다


1991년 방송된 KBS2 TV 주말드라마 야망의 세월 유인촌과 전인화


전원일기 둘째 아들로 서글서글한 이미지의

유인촌이 바로 백양 BYC의 모델이었는데

KBS2TV 주말드라마 야망의 세월의 인연으로

이명박 정권들어 문화체육부 장관에 취임하게 되였다.


성질뻗쳐서 XX란 대사

아이패드를 한국에서 인증받기전에 브리핑에 사용해서

과일촌 유익점이라고 불린 유인촌이다.


유인촌은 1990년대 KBS2 TV에서 방송되었던

현대건설 이명박을 모델로 만든 드라마

야망의 세월의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


현대건설 주식회사 로고

1990년 5월 소련을 방문한뒤 찍은 사진 이명박 정주영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현대건설 이명박과 정주영의 이야기가

대한건설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졌고

당시 마누라로 전인화가출연

이휘향과 꾸숑으로 최민식이 출연하였다.


이 드라마의 인기로 유인촌은 대우전자 모델을

최민식은 광동제약 운지천 광고를 찍게되었다.


유인촌의 모델인 이명박은 드라마의 인기로

1995년 김영사에서 신화는 없다라는 책을 출판했고

이후 2000년 들어 서울시장까지 재직하였다.


1995년 김영사에서 출간된 이명박 저서 신화는 없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8. 27. 17:54

1991년 광고고속 (금호건설) 건설사업부사원모집 지면광고

1991년 광주고속 주택사업부


예전엔 고속버스 회사에서 주택사업을 벌이는 일이 몇몇 있었다.

동양고속에서도 건설사업을을 벌였었고...

금호건설말고 금호개발이라는 건설회사가 또 있던데

금호건설 자회사 3개를 묶어서 만든게 금호개발이라고 한다.

지금도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현대그룹만 해도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금감개발산업, 고려산업개발등

건설회사 4개사를 보유중이었던걸 보면

1970년대 중동건설붐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건설회사가 참 많았던 모양이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ine/잡담방2015. 8. 15. 20:40

1991년 연예 영화종합월간지 로드쇼 5월호 값 3,500원


1. 빅사이드 스타 브로마이드 - 소피 마르소 / 톰 크루즈

2. 홀 보디 사이즈 브로마이드 - 박중훈 / 이지연

3. 오리지날 영화포스터 - 인디아나죤스3 / 천녀유혼


독자요청 앵콜 로드쇼 특별 프레젠트


천녀유혼


* 호화포토 명장면 콜렉션

SFX의 비밀 대해부

수이 하크 서극 특별인터뷰


성룡 35살 생일파티 현장방문 ' 해피 버스데이 투 재키'

홍콩 촬영현장 기습인터뷰 주윤발 VS 종초홍

스티븐 스필버그 긴급 리뷰 - 인디아나죤스3 : 취후의 십자군


메인 모델은 킴 베신져 (당시에 불리던 이름. 후에 킴 베이싱어라고 불렸다.)

대충 기사목록들 보면 알겠지만 국내파 연예인과 해외파 주로 홍콩과 미국쪽 영화배우들 기사를 실었다.

예외로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 기사까지 나왔지만...


그리고 이때 부록으로 자주 주던게 스타 브로마이드다.

솔찍히 잡지보단 저 커다란 브로마이드에 좋아하는 스타가 나오면

브로마이드를 얻는게 주가 되었고 잡지가 부가 되는 반대현상이 벌어졌다.

잡지에 좋아하는 스타의 기사가 실리면 금상첨화였겠지만..


로드쇼와 영화잡지업계를 양분하던 게 스크린이었다.

영화전문잡지라고 할수는 없지만 대체로 영화정보가 많이 실려있던 잡지는

로드쇼와 스크린이 대표적이었다.

둘다 월간잡지였고 1995년 창간된 한겨레신문의 씨네21은 주간발행 영화잡지였다.

하지만 씨네 21의 경우는 인지도 면에서 로드쇼와 스크린에 밀리는 편이었다.

2천년대 들어서 로드쇼와 스크린이 사라진 공백을 씨네 21이 메웠다고 하면 적절하겠다.

'Cine > 잡담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헥시나 (1993)  (0) 2016.06.18
스타워즈 4 5 6 포스터?  (0) 2015.10.17
원초적 본능 1992년 지면광고  (0) 2015.07.19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