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신문잡지2015. 9. 18. 21:52

1991년 3월 22일 두산전자가 페놀 낙동강 방류사태가 벌어진 이후 사과광고를 올렸다.




1991년 페놀 방류사태이후 낸 사과 광고의 내용은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두산전자 공장 외부에 설치된

페놀 원료탱크로부터 공장안으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 중

지하매설부분에서 뜻하지 않은 유출사고가 발생


수용성이 강한 페놀이 낙동강으로 흘려들었다는 설명과

사고의 원인을 제거하였다는것과

상수원이 원상회복되도록 노력을 귀울이겠다는게 요지다.


고의성은 없었다는것과 현재는 사고의 원인을 제거

원상회복에 노력하겠다는것이 요약

1991년 3월 22일 두산 규탄 확산


하지만 이 사고 이후 페놀을 방류하는 사태가 다시 발생하였다.


페놀 낙동강 방류사태후

영남권에선 대대적으로 두산 전 계열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졌으며

대표적으로 코카콜라와 관련제품 OB맥주

버드와이저 KFC 동아출판사 한국네슬레 등의

제품들이 주된 불매 대상이었다.


1991년 3월 27알 두산 제품 품목정해 불매. 주부클럽 결의 참여호소

1991년 3월 24일 두산 창업이후 최대위기 한숨

2백억 기부금 싸고 청와대 종용설 나돌아. 오염기업 낙인땐 끝장 시설점검 호들갑


두산은 대구 영남지역의 주민들에 대한 피해보상 외에

대구시에 200억월을 기부하겠다는 제스춰를 취했다.


4월 2일 두산 페놀방류 고의적

보사위 조사 대구 환경청장 비밀배출구 시인

페놀공포 당국도 못믿는다. 낙동강 연안 천만 주민 재유출에 경악 분노

두산 페놀 수원지 오염

4월 24일 페놀이 재 유출된 이후 기사

두산 정신있나 없나 2시간동안 사고 은폐

1992년 7월 두산 페놀방류 첫 시인


1년 4개월만에 비밀배출구로 폐수를 무단방류했다는걸

두산전자가 시인했다는 기사

두산전자는 그동안 고의성 여부가 없다며

재판을 벌였으나 소 취하를 통해서 이를 시인했다는게 내용이다


페놀 방류 4년뒤 1995년 94.95 2년연속 환경관리 국내 1위를 내세우는 두산그룹 지면광고

1994년 동양맥주 주식회사(OB맥주) 4개 공장 환경모범업체 선정

환경처와 조선일보 공동주최 94 맑은물 부문 환경대상을 수상했다는 지면광고


페놀 방류사태이후

사고 수습을 위해 사과광고를 내었지만

고의성은 없었다는게 광고의 주 목적


200억원의 기부금을 내놓고

사건처리를 잘(?)하는듯 싶었으나

페놀을 다시 유출했고 고의성 여부에 대한 불복으로 재판을 벌이다가

스스로 소 취하하고 4년뒤 환경모범업체 선정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두산그룹의 모습을 보니 참 씁쓸하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7. 21:30

1994년 대우전자 디지털 피아노 벨로체 지면광고


1994년 3월 30일

대우전자에서 디지털 피아노 벨로체를 생산 판매에 들어갔다.

기존 피아노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무거웠던 반면

전기로 연주하는 디지털 피아노 벨로체는

가볍고 비교적 싼 가격에 구매할수 있는 제품이었다.



기존의 피아노 판매업체였던 삼익악기와 영창악기는

95년 삼익 아르떼 피아노와 영창 그린피아노등 신제품을 내놨고

이에 대우전자는 가야금 대금 굿거리 장단을 추가한 벨로체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시판 1개월만에 1천대가 판매되는등 판매폭증을 기록했다.


하지만 불어닥친 IMF의 바람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1998년 9월 전자업계 인력감축에

대우전자에서 벨로체 사업부만 따로 분사되었다.

지금도 업체가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3. 18:49

1995년 비락 식혜 수정과 지면광고


포도 오렌지 쥬스 사이다 콜라 제품이 주류였던

음료수 시장에 전통의 음료

식혜와 수정과가 상품화되어 캔으로 나왔다.


탄산시장에서 1986-88년 사이 보리열풍이 분것과 같이

1990년대엔 단호박과 식혜 수정과처럼

한국인이 즐겨먹던 음식이 캔음료로 나왔다.


동서식품에서는 우롱차가

해태음료에선 내고을 단호박

웅진식품에선 가을대추 캔음료가 나왔고

한국야쿠르트 팔도 계열인 주식회사 비락에서

비락식혜와 비락 수정과가 나왔다.



이 제품들이 인기를 끌자 경쟁사에선

이에 질세라 미투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했다.


비락은 그전까지 비락우유를 판매하던 회사였으나

비락 식혜 수정과 출시로 1996년엔 매출 1300억원을 넘보는 회사가 되었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2. 12:22

1991년 7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여름 정기세일 지면광고


1991년까지만해도 주식회사 화인의 스포츠브랜드 상표

프로월드컵의 로고는 W를 형상화한것이었다.



그러나 아래 보이듯이 1991년부터는

농구공이 튀기는 모양을 형상화 시킨 로고로 바뀌었다.

반면 뱅가드의 상표는 1990년부터 변화가 없다.


광고를 올려놓고 보니

세일을 2개월마다 한셈이니 꽤나 자주했다.

자금사정이 안좋았던건가?


프로월드컵의 경우는 운동화와 스포츠브랜드 이미지가 강했다면

뱅가드는 캐쥬얼화 그리고 의류브랜드의 이미지가 있었다.

당시 캐주얼 브랜드로는 금강제화의 랜드로바와

에스콰이아의 영에이지 심플리트가 경쟁을 펼치고 있었는데

여기에 뱅가드도 가세를 한것


워낙 랜드로바 VS 영에이지의 경쟁구도가 쎘기 때문에

뱅가드는 인지도는 있었지만 판매량이

많았을런지는 모르겠다.


당시 랜드로바의 모델은 그룹 봄 여름 가을 겨울

영에이지 심플리트는 남자모델의 경우

박상원과 최재성 박형준 윤동환이 교체되면서 나왔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모델 황진아가 나왔었다.


광고가 꽤 코믹스런 분위기였는데

황진아 역시 인기가 있었는지

꽤 오랫동안 영에이지 시리즈의 모델로 나왔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기엄마가 되었다고..


프로월드컵 바뀐 로고 광고를 찾았기에 올려본다.


1991년 9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가을맞이 찬스세일 지면광고

1991년 11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겨울 세일 지면광고

1992년 4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러브세일 지면광고

1990년 8월 프로월드컵 뱅가드 전품목 정기세일 지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1. 19:25

1991년 한국 소련 수교 기념 금 은 메달리온 지면광고 (4월 24일 - 5월 9일)

1991년 4월 한국 소련 수교 기념 금 은 메달리온 지면광고

한정수량으로 소련 정부에서 제작한 목걸이와 주화를 팔았는데 주화의 경우 금화는 168만 - 38만원대 은화의 경우 48만원 - 76만원대

한소 수교기념 금은 메달리온


1990년 9월 노태우 정권들어 한국과 소련이 수교하였다.

북한의 김일성 정권 1950년 한국 전쟁이후로

오랜 기간 적국이었던 소비에트 연방(소련)과

수교를 하게된 역사적인 날로

양국간 수교를 한 이듬해 4월

한 소 수교기념메달을 남교물산에서

4월24일부터 5월 9일까지 한정판으로 판매하였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아

동서 화합의 제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고

마침내 소련의 올림픽 참가라는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1989년엔 동구권으로 분류되던 헝가리와도 수교를 맺게 되는데

소련과의 협의를 거친듯 하다는 프랑스 르몽드지의 보도도 있었다.


한국의 소련과의 수교 노력은 1988년부터 있었는데

소련의 거부로 수교노력이 두차례 무산되었다가

1990년 9월30일 한소 수교를 이루어냈다.


역대 정권들이 자신의 임기내에 뭔가 치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한걸 본다면 노태우 정권때는

한소 수교 한중 수교 정도를 이뤄냈다고 할수 있겠다.


한국과 소련이 수교를 시도하는 동안

북한의 김정일은 소련에 항의하였고

한국과 소련이 수교를 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북한은 일본과 수교하였다.


최호중 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9월 30일 낮 뉴욕 유엔본부에서 양국간 수교에 합의하는 공동코뮈니케에 서명한뒤 담소를 나누고 있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0. 18:09

1991년 코카콜라 지면광고


주로 피자와 치킨 햄버그등

고기류와 같이 먹게되는 코카콜라


이례적으로 코카콜라는

한국의 명절을 맞아

우리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코카콜라

라는 문구로  지면광고를 진행한다.



기존에 TV에서 나왔던

코카콜라 CF는

지금 본다면 약간 촌스럽지만

당시엔 그 어느 광고보다도

돋보이고 세련되어 보이던

광고들이었다.


뭔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하나의 멘트를 전달해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전 세계에선

압도적으로 펩시를 눌렀지만

한국에선 롯데칠성과 사이다 시장에서

힘겨운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콜라시장에선 여전히 롯데칠성의

펩시를 따돌리고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10. 17:57

1990년 일화 천연사이다 지면광고


보리음료 맥콜로 인지도를 높인 주식회사 일화

초정리 광천수로 만든 천연사이다를

내세워 사이다 시장에 진출했다.


기존 사이다는 단맛에 탄산이 강했던 맛이라면

일화의 천연사이다는 약간 쓴맛에

탄산을 추가한 맛이었다.


단맛은 없고 쓴맛이 느껴졌지만

의외로 괜찮았다.


당시 사이다 시장은

롯데칠성음료의 칠성사이다가

70% 이상 점유하고 있었고




롯데칠성음료의 칠성사이다


해태음료의 세븐업 7up


코카콜라사의 킨사이다



그 외에 코카콜라사의 킨사이다

해태음료의 세븐업이

경쟁하고 있었다.


해태음료의 세븐업과 일화의 천연사이다는

사이다 시장의 2 - 5% 점유율을 기록했다.


사이다 이야기는 나중에 세븐업 관련글에서

다시 다뤄보도록 하겠다.


일화하면 문선명의 통일교 재단과도 무관치 않은데

한때 문선명이 통일교를 국교로 삼으면

한국의 빚을 다 갚아주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문선명은 2012년 9월 3일 사망했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9. 20:42

1990년 12월 빙그레 아이스크림 투게더 호두맛 컬러 지면광고


1974년 출시된 빙그레 바닐라맛 아이스크림 투게더

당시 빙과류가 20-30원 하던 시절에

우유가 넉넉하지 않던때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이었던

빙그레 투게더는 비싼 가격인 500원에 판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2-3만개 생산되었던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1980년 노주현이 빙그레 투게더 TV CF 모델로 나왔으며

10년뒤인 1990년 지면광고를 통해 다시 모델로 돌아왔다.


온가족이 함께 투게더 투게더~

CM송을 송창식이 불렀는데

차후에 투게더 CF를 다시 올려보겠다.


주식회사 빙그레 로고

롯데제과 주식회사 로고

해태제과 주식회사 로고


80년대 들어 경쟁사인 롯데제과 롯데삼강과 해태제과쪽에서

대응제품을 내놓았는데 롯데제과는 조안나 골드 아이스크림

롯데삼강은 구구 크러스터 해태는 베스트원을 내놓기도 했다.


투게더보다는 베스트원과 조안나골드를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1990년 7월 빙그레 아이스크림 투게더 바닐라맛 컬러 지면광고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6. 18:50


1998년 애경 B&F 화장품 김규리 지면광고


1998년 영화 여고괴담의 흥행으로

각종 CF를 석권했던 김규리(본명 / 김문선)



동아오츠카의 포카리 스웨트

엡손의 프린터 CF등

여러 CF에 얼굴을 내비췄고

여자들이 가장 나오고 싶어한다는

화장품 CF에도 얼굴을 드러냈다.


화장품 시장은

태평양화학과 LG생활건강

한국화장품 라미화장품 나드리화장품

제일제당 코리아나등 여러업체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거기에 세제업체로 유명한 애경까지 가세하여

B&F라는 이름으로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였는데

모델로 나온게 바로 김규리였다.


B&F

Be & Forever 를 줄인말로

처음볼때는 BiF 보르네오 광고에서

만든 제품인줄 알았다.


화장품도 화학계열 제품이니

애경에서 화장품을 만드는게

그리 낯선것만은 아니다.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
CF/신문잡지2015. 9. 6. 18:34

1990년 빙그레 이라면 지면광고


농심 삼양 팔도에 이어

스낵과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던

빙그레도 라면사업에 진출했다.


한국화약그룹의 계열사이자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던 빙그레가

트로트 가수 주현미를 모델로 내세워

빙그레 라면 이라면 광고를

내보냈다.


CF 삽입곡은

주현미의 히트곡을 사용해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라는 부분을 차용했다.


1992년 빙그레는 최민수를 모델로 내세워

대용량 컵라면 캡틴을 출시했다.

팔도에서는 왕뚜껑을 1990년대 이미 만들었었고

빙그레도 이에 뒤질세라 대형 컵라면을 만들었던 것


대형이라곤 하지만 용기만 컷지

실제 라면은 그렇게 양이 많은것도 아니었다.

가격은 500원대였으나 얼마 안가 1천원이 넘어선걸로 안다.


1993년 빙그레는 캡틴 매운탕도 출시하였는데

이건 농심 신라면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것 같다.


1992년 빙그레 캡틴 컵라면

1993년 출시한 빙그레 캡틴 매운탕

Posted by 카시와자키 세나